1893년 1월 2일, 열다섯 살의 쉬린은 아들을 낳았고 그 아이에게 페르시아 왕의 이름을 따 잠쉐드라 이름 지었다.1 그러나 쉬린은 아직 너무 어려서 어머니로서의 책임을 제대로 감당하기 어려웠기 때문에, 언니 도울라가 아기를 돌보게 되었다. 도울라와 그녀의 남편 파레둔 나오로지 이라니는 자녀가 없었고, 푸나에서 멀지 않은 휴양 도시 로나블라에 살면서, 기차역 근처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다. 조로아스터교 친척들 사이에 흔한 관습에 따라, 도울라와 파레둔은 아이에 대한 책임을 온전히 맡아 잠쉐드를 자신들의 아들처럼 키웠다.
잠쉐드가 태어난 지 몇 달 뒤 쉬린은 다시 임신했다. 그런데 이번 임신은 이전과는 사뭇 달랐다. 처음부터 쉬린은 아이를 간절히 기다리는 젊은 엄마로서 자연스러운 기쁨을 느꼈다. 첫아이를 낳았을 때는 어머니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언니 도울라가 잠쉐드를 데려올 때마다 쉬린은 아기 앞에서 쭈뼛거리며 슬며시 피하곤 했다. 그러나 두 번째 임신 때는 한결 성숙해져서, 느끼는 감정도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젊은 여인의 가슴은 아직 태어나지 않은 아이에게 사랑을 한껏 쏟아붓고 싶은 열망으로 가득했다.
둘째 아이가 태어났을 때와 그의 어린 시절에 가족이 어디에 살았는지에 대한 정확한 내용과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러나 당시 셰리아르와 쉬린이 푸나의 버틀러 모할라 816번지에 살고 있었다고 보는 사람들도 있다.2 집 입구 옆에 호박을 닮은 커다란 둥근 돌이 놓여 있어 사람들은 그 집을 보플라(호박) 하우스라 불렀다.3 근처 마당 건너편에는 '소원 우물'이 있었고, 주민들은 그 우물을 길한 곳으로 여겼다.
임신 기간 동안 쉬린은 종종 아름다운 꿈을 꾸었고, 그 꿈을 어머니 골란둔에게 이야기하면 어머니가 그 뜻을 풀어 주곤 했다. 잉태한 날부터 이 젊은 어머니는 뱃속의 아이가 보통 아이가 아니리라는 확신을 품고 있었다. 셰리아르도 아내와 같은 기대를 품었다 그는 하피즈의 디반에서 아름다운 가잘(ghazal, 하나님께 바치는 페르시아 시)을 그녀에게 읽어 주며 시의 숨겨진 의미를 설명하곤 했다. 시인이기도 했던 셰리아르는 때때로 모나자트(monajat, 조로아스터교 기도)와 신을 주제로 한 영적 노래를 지어 쉬린에게 들려주곤 했다.
당연하게도 온 가족은 물론 이웃들까지 쉬린의 둘째 아이가 태어나기를 애타게 기다렸다. 쉬린은 그 어느 때보다 사랑스럽고 환하게 빛났고, 모두가 아름다운 아기가 태어나리라 기대에 부풀어 있었다.
"1400년 만에 가장 경이로운 사건이 곧 일어나려 한다!" 하고 시대는 선언했다. "하나님 자신이 육화하신다!"
각주
- 1.잠쉐드를 비롯하여 이 책에 언급된 대부분의 조로아스터교도는 《샤나메》에 나오는 인물의 이름에서 따온 것이다.
- 2.메헤르 바바를 기리어 버틀러 모할라는 후에 메헤르 모할라로 개명되었다.
- 3.바바의 여동생 마니는 바바가 태어났을 때 부모가 보플라 하우스에 살고 있었다고 말했으나, 한 초기 기록에는 셰리아르가 1898년경에 보플라 하우스를 구입했다고 언급되어 있다. (《메헤르 가제트》, 제2권, 제5호, 6쪽.)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