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는 이미 약속을 해 버렸다.
게다가 골란둔은 셰리아르를 존경했고 딸을 그런 "성인 같은 사람"에게 시집보내는 것이 걱정되지 않았다. 반면 도랍지는 그런 터무니없는 약조를 받아들일 수 없었다. 셰리아르가 아무리 좋은 사람이라 해도, 그는 사랑하는 딸의 남편감으로 생각해온 유형이 아니었다.
물론 어린 쉬린은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전혀 알지 못했다. 낯선 사람이 그녀의 손가락에 반짝이는 은 약혼반지를 끼워 주자 그녀는 몹시 기뻐했고 그것을 또래 친구들에게 보여 주곤 했다. 쉬린이 장난을 치다가 셰리아르 눈에 띄면, 그가 나서서 타이르곤 했다. 쉬린은 어머니에게 불평하곤 했다. "이 사람이 누군데 나한테 이래라저래라 하는 거예요?"
골란둔이 피로자에게 한 약속이 이루어지기까지 아홉 해가 흘렀다. 셰리아르와 쉬린은 1892년 조로아스터교 관습에 따라 결혼했다. 그때 신랑은 서른아홉 살이었고 신부는 겨우 열네 살이었다. 피로자와 골란둔은 기뻐했지만 도랍지는 여전히 그 혼약을 받아들일 수 없었고, 결혼식 참석을 거부하며 항의했다.
천성이 매우 선하고 다정한 셰리아르는 결혼 생활에 잘 적응했다. 그는 이제 건강하고 튼튼한 체격을 갖추고 있었다. 아내를 부양하기 위해 셰리아르는 일자리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집집마다 다니며 천을 팔았다. 그는 정원사로 일하다가 그다음에는 요리사로 일했고, 나중에는 방갈로 관리인이라는 더 나은 자리로 옮겼다(월급은 한 달 100루피였다). 그러나 셰리아르는 오로지 돈을 위해 세상일이나 사업에 관심을 둔 적이 없었다. 예즈단의 성스러운 이름이 늘 그의 입술에 머물렀고 그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았다. 셰리아르는 어린 신부에게 말하곤 했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모두 하나님의 뜻입니다. 일어난 일은 일어나도록 되어 있었고, 앞으로 일어날 일도 결국 일어나게 되어 있습니다. 모든 것을 하시는 분은 하나님입니다." 그럼에도 그는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피할 수 없음을 알았기에, 가정을 꾸려 나가는 데 필요한 일들을 성실히 해냈다.
쉬린은 남편이 재치 있고 유머 감각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혼 초기 몇 해 동안 셰리아르는 쉬린에게 페르시아어를 가르치며, 하피즈의 디반과 샤나메를 읽어 주곤 했다.1 셰리아르는 어린 아내를 무척 사랑하며 그녀를 기쁘게 해 주려고 최선을 다했고, 쉬린도 어느새 그를 사랑하게 되어 다정하게 쇼로그라고 불렀다.
셰리아르는 데르비쉬로 살던 시절 오랜 세월 엄격한 채식 생활을 했으며, 결혼 후에도 그 생활을 그대로 유지했다.
각주
- 1.《샤나메(Shahnameh)》는 이슬람이 페르시아에 전래되기 이전의 페르시아 역사 서사시이다. 셰리아르는 영어를 조금 이해하고 말할 수 있었으나 쉬린은 그렇지 못했다. 가족은 서로 다리어(Dari)로 대화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