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4년 전 남인도 도보 여행 중 스승이 했던 경고를 또렷이 기억했다. "절대 바바가 되지 마라!"
6월 19일, 바바의 자리 근처에 그가 앉아 몸을 흔들 수 있는 그네가 설치되었다. 토카로 옮긴 뒤 만달리는 바바의 기분이 거의 끊임없이 변하는 것을 보았다. 한순간은 흡족해 보이다가 다음 순간엔 격노했고, 한순간은 엄숙하다가 이내 평소의 다정한 모습으로 돌아왔다.
1928년 6월 20일 수요일, 만달리는 마침내 입주 준비가 끝난 새 마칸 숙소로 옮겨 갔다. 베일리는 그들의 숙소를 이렇게 묘사했다. "크고 작은 나무들 사이에 벽돌과 모래로 만든 작고 큰 집들이 흩어져 있었고, 두세 무리로 나뉘어 있었다. 형편에 따라 어떤 집에는 만달리 다섯에서 일곱 명이 지냈고, 어떤 집에는 열둘에서 열다섯 명이 지냈다." 바바를 위한 벽돌방도 지어졌다.
그날 보르케르는 평소 수요일 방문처럼 앙갈과 함께 왔다.
저녁에 바바는 만달리가 새 숙소로 옮긴 것을 기념해 모두에게 차를 내오라고 했다. T. 알렉산더의 책 『Some Hours of Meditation』에서 "The Master and His Greatness"라는 장이 낭독되었다. 앙갈은 그것을 마라티어로, 라오사헵은 페르시아어로 옮겼다. 낭독이 진행되는 동안 소년들 중 한 명인 압바스 칸이 (자신의 말로는) "강력한 빛에 눈이 부셔" 쓰러졌다.
21일에 바바는 토카로 옮긴 뒤 처음으로 소년들과 크리켓을 했다. 다케이는 아내 카쉬바이와 함께 토카의 가족 숙소에서 다른 교사들과 살았는데, 만달리 거처에서 조금 떨어진 곳이었다. 그날 아침 비슈누는 차를 마시러 다케이의 방에 갔다.
바바가 그 만남을 알게 되자 비슈누와 다케이를 꾸짖고 만달리에게 명령했다. "아무도 가족 숙소나 여성 만달리 구역에 들어가서는 안 된다."
이 취지의 공지가 작성되어 모든 사람에게 읽도록 배포되었다. 그날부터 메헤르지와 람주가 오후 두 시부터 밤 여덟 시까지 여성 숙소 근처를 지키도록 임명되었다.
바바가 여성 만달리를 방문할 때마다 프렘 아쉬람 소년들은 그를 따라가 자기들 쪽으로 데려오려 했다. 여성들이 바바와 사적으로 함께할 기회가 거의 없었는데도 소년들은 그를 좀처럼 혼자 두지 않았다. 어느 날 바바가 여성들과 앉아 있을 때 소년들이 그 자리에 나타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