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후 토카에서는 밤낮없이 작업이 이어졌고, 2주 만에 임시 건물들이 세워졌다. 두니 옆 테이블 캐빈은 바바가 머물 수 있도록 5월 30일 토카로 옮겨졌고(소 네 마리가 끄는 수레로), 그곳 정착에 필요한 나머지 준비도 모두 갖춰졌다.
1928년 6월 1일 금요일, 메헤라바드와 메헤르 아슈람, 가족 거처, 여성 거처의 물품을 옮기기 위해 소달구지 11대가 왔다. 바바는 그날 네다섯 차례 언덕을 내려와 수레에 짐 싣는 일을 직접 감독했다.
아흐메드나가르와 아우랑가바드 사이에 있는 토카는 아흐메드나가르에서 45마일 떨어져 있다. 그곳은 고다브리강과 프라바라강이 만나는 지점에 자리하며, 시바지의 스승 스와미 람다스와 사이 바바도 그 일대에서 오래 머물렀다고 전해진다. 토카는 황량해 보였지만, 언덕과 나무, 강이 어우러진 주변의 아름다운 경치는 바바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그 일대에는 평화로운 기운이 가득했다.
메헤라바드에서 아슈람을 토카로 옮기는 일이 한창일 때, 인근 마을과 도시에서 많은 사람이 찾아와 메헤르 바바의 다르샨을 요구했다. 실제로 스승이 그 지역을 떠난다는 소문을 들은 사람이 많아 다르샨을 받으려는 인파가 크게 늘었다.
그보다 앞선 1928년 5월 27일 일요일, 짐을 싸고 마지막 지시를 내리던 와중에 아슈람에 들어오길 원하던 카이쿠쉬루 플리더와 사박 딘쇼 코트왈이 미누 N. 포호왈라와 함께 도착했다. 바바는 그들이 만달리와 친해지고 여러 일을 익힐 수 있도록 며칠간 메헤라바드에 머물게 했다. 람주는 저녁에 로나블라와 봄베이로 떠났다.
다음 날 바바는 플리더를 메헤라바드 언덕으로 불러 무엇을 이루고 싶은지 물었다. 플리더가 대답했다. "저는 하나님을 보고 싶습니다."
바바가 경고했다. "그것은 세상에서 가장 어려운 일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상상할 수 없는 용기를 지니고 말로 다 할 수 없는 고난을 겪어야 합니다."
그럼에도 플리더는 모든 궁핍과 불편을 감수할 준비가 되어 있다고 하며, 자신은 가족에 대한 책임이 없고 세속에서 완전히 자유롭다고 말했다.
바바가 지시했다. "집으로 돌아가 모든 일을 원만히 정리하십시오. 모든 책임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면 다시 오십시오."
플리더는 이를 받아들이고 봄베이로 돌아갔다. 그는 친척들에게 결심을 알리고 몇 가지 일을 정리한 뒤, 토카로 옮기기 직전 일주일 안에 메헤라바드로 돌아와 바바 곁에 영구히 합류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