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바바의 손톱과 머리카락, 그리고 밤에 바바가 귀에 넣던 솜까지 모아 두곤 했다. 영혼은 그리움으로 아파하고 있었다. 그의 가슴과 입술에서는 스승, 신적 연인, 영원한 사랑의 노래가 터져 나왔다.
1927년 11월 25일 금요일, 바바는 아쉬람 소년들에게 하나님 사랑에 관해 담화했다.
하나님은 너희 안에 계신다. 그러니 너희 안에서 그분을 찾아야 한다. 하지만 어떻게 찾아야 하겠느냐? 마음속에 그분에 대한 사랑을 일으키려 애씀으로써다. 일단 사람이 길 위에 굳게 발을 디디면 목표를 향해 나아가게 된다. 사랑은 다음과 같이 배고픔에 비유할 수 있다. 배고픔이 사랑을 상징한다고 해 보자.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은 하나님을 끊임없이 생각하는 마음을 상징한다. 음식을 얻으려 애쓰는 것은 하나님을 향한 초조함과 강렬한 그리움에 비유할 수 있다. 어머니나 요리사의 도움은 사드구루의 도움을 상징하고, 실제로 식사를 하는 것은 하나님 실현에 이르는 것을 상징한다.
음식을 먹기 전에 식욕이 필요하듯, 하나님을 실현하기 전에도 사랑이 먼저 생겨야 한다. 식욕이 생기면 먹는 생각이 끊임없이 떠오른다. 이와 같이 하나님 사랑이 생기면 사람은 그분을 계속 생각하기 시작한다. 두 경우 모두에서 분투가 시작된다. 배고픈 소년은 음식을 찾고, 사랑하는 이는 그 사랑의 대상을 찾는다. 그에 따른 노력은 전자를 어머니나 요리사와 만나게 하고, 후자를 스승의 영역으로 이끈다. 때가 되면 둘 다 각자의 목표를 이룬다.
이것은 적절한 비유지만, 결국 비유일 뿐이다. 사랑을 만들어 내는 일은 식욕을 만드는 일만큼 쉽지 않고, 스승은 요리사처럼 금방 만날 수 있는 존재도 아니다!
너희는 어떻게 사랑을 만들어 내겠느냐? 사랑 때문에 우는 데서 그칠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분을 위해 피를 흘려야 한다! 이것이 사랑이다. 사랑의 가장 높은 상태다. 너희 중에 그런 사람이 있느냐? 아무도 없다! 하지만 걱정하지 마라. 노력하라.
사랑은 하나님 실현으로 가는 디딤돌이다. 그 사랑이 너희 안에 생기면 너희는 자연히 하나님만 생각하게 되고, 그것은 다시 하나님을 보고 그분과 하나 되기 위한 초인적 노력으로 이어질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깨어난 사랑이 너희를 결코 평안히 두지 않을 것이다! 그 사랑은 목표를 이루도록 너희를 끊임없이 행동으로 몰아갈 것이다!
그래서 수많은 실망과 고통, 분투를 겪은 뒤에도 결국 사람은 반드시 스승의 궤도 안으로 들어와 그의 도움으로 목표에 이르게 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