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오사헵이 맡고 있던 아이들도 11월 8일 가족 숙소로 옮겨졌고, 카카 샤하네의 가족은 보만지의 옛 숙소로 이사했다.
1927년 11월 10일 목요일부터 바바는 커피와 우유만 마시는 장기 액체 단식에 들어가 거의 다섯 달 반 동안 이어 갔다. 그날 저녁 두니 기념일이 거행되었고, 만달리와 소년들은 두니에 불이 붙자 그 둘레로 모여들었다. 바우사헵은 바바가 앉아 있던 테이블 앞에서 바잔을 불렀다. 의식이 끝난 뒤에는 오랫동안 비가 없던 공백 끝에 사흘 내내 꾸준한 비가 내렸는데, 며칠 전 바바의 예언 그대로였다.
다음 날 오후의 폭우로 바바는 언덕에서 내려오는 길이 지체되어 식당에 앉아 있었다. 그는 그 기회를 이용해 많은 사람들의 잘못을 지적했다. 잘못을 지적받은 사람들 중 하나였던 찬지는 이렇게 적었다. "바바는 도마뱀과 같았다. 먹이를 기다리며 지켜보다가, 먹이가 눈치채지 못한 사이에 덮쳐 그대로 턱에 물어 넣었다."
11월 12일, 소년들이 작은 그룹으로 나뉘어 바바에게 갔다. 비가 오고 있었기 때문에 바바는 그들의 발을 씻기고 수건으로 닦아 주었다. 바바는 그들이 감기에 걸리지 않도록 퀴닌 정제를 주었다. 니살은 상급생들을 먼저 데려오지 않은 일로 문책받았고, 자기 뺨을 때리라는 명령을 받았다.
다스투르는 다른 교사들에 대한 불만을 제기하며, 그들이 너무 소란스러워 자기 교실 수업에 방해가 된다고 주장했다. 바바는 다스투르의 반을 다른 반들에서 조금 떨어진 곳으로 옮기게 했다.
봄베이의 루스톰 디냐르 이라니는 몇 년 전 푸나 카스바 페트의 토디숍에서 바바를 만났고, 만질-에-밈에서도 바바를 찾아온 적이 있었다. 1922년 그는 만질-에-밈에서 자기 사촌 카르멘 마시를 바바에게 소개했다. 당시 카르멘은 결혼하여 세 아들이 있었지만, 남편이 폭력적이어서 불행했다. 몇 년 뒤 남편이 죽자 바바는 그녀가 루스톰 디냐르의 청혼을 받아들이도록 격려했고, 그녀는 그렇게 했다.
루스톰 디냐르는 12일 카르멘의 두 아들 호미와 사로시를 데리고 메헤라바드에 도착했고, 두 소년은 아쉬람에 머물며 학교에 등록되었다. 막내 남동생 메르완은 나중에 합류할 예정이었다.
놀랍게도, 메헤르지 카르카리아가 공학 시험에 떨어졌다. 그래서 그는 11월 14일 메헤라바드에 와서 지내게 되었고, 바바는 그를 영어 교사로 임명했다. 바일리도 푸나에서 도착해 닷새 동안 머물렀다.
같은 날 바바는 파드리를 페르시아어 교사직에서 물러나게 하고, 자신이 직접 수업을 맡기 시작했다. 그는 알파벳 보드로 의사소통했고, 라오사헵이 이를 학생들에게 읽어 주었다. 겉으로는 바바가 페르시아어를 가르치는 것처럼 보였지만, 침묵 속에서 교사 역할을 수행한 데에는 더 깊은 의미가 있었다. 스승은 눈길을 통해 포도주를 따르듯 아이들 안에 하나님에 대한 갈증을 일으키고 있었다. 학생들은 스승의 신성한 사랑을 받았을 뿐 아니라 높은 수준의 세속 교육도 받아, 다른 곳에서 보통 1년 걸릴 내용을 한 달 만에 배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