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파스니 마하라지는 사이 바바의 영적 후계자, 혹은 수제자로 알려지게 되었고, 그의 명성이 퍼지자 사이 바바의 신도들 가운데 일부는 질투하여 그를 괴롭힐 방도를 꾸몄다. 일부는 심지어 우파스니를 살해할 계획을 세웠다. 적대적인 상황을 무마하기 위해 우파스니는 치질 재수술을 받는다는 구실로 사이 바바의 동의를 얻어 미라즈로 갔고, 그곳에서 수술을 받았다. 회복한 뒤에도 우파스니는 한동안 쉬르디로 돌아가지 않고 인도 각지를 다니며 사람들에게 영적인 주제들에 대해 강론했다. 쉬르디의 긴장이 가라앉은 뒤 그는 돌아왔다.
사이 바바가 "파르와르디가르"라고 말했던, 푸나 출신의 젊은 조로아스터교도가 멍한 상태로 칸도바 사원까지 헤매어 들어온 것은 1915년 12월이었다. 우파스니 마하라지는 단식 중이었고 해골처럼 수척해져 있었다. 그는 사원 계단 바깥에 앉아 있었고, 그 젊은이는 합장한 채(나마스카르의 손짓으로 두 손바닥을 맞댄 채) 천천히 앞으로 걸어왔다. 우파스니는 그를 똑바로 바라보더니 돌을 집어 들고 일어나 젊은이에게 던졌고, 돌은 그의 이마를 세게 맞혀 상처에서 피가 났다.
시대는 그의 기이한 행동을 곰곰이 헤아렸다. "우파스니 마하라지가 이 젊은이에게 화가 났던 것일까?" 하고 시대는 의아해했다. "아니다! 그의 얼굴에는 감미로운 승리의 미소가 있고, 피로 얼룩진 젊은이의 얼굴에도 같은 미소가 있지 않은가!"
그 젊은이는 달아나지 않고 오히려 우파스니에게 더 가까이 다가갔다. 우파스니는 그를 칸도바 사원 안으로 이끌었고, 그곳에서 이틀간 단둘이 지냈다. 그 후 우파스니는 애정을 담아 그 젊은이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그 이틀 동안 칸도바 사원에서 정확히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아무도 모르지만, 우리는 우파스니 마하라지가 그 젊은이에게 태고의 분(Ancient One)으로서의 그의 신성한 정체성을 드러내 주었으리라 짐작할 수 있다.
1917년 7월, 샨카르 파틸이라는 사람이 우파스니 마하라지를 쉬르디에서 약 3마일 떨어진 가난한 마을 사코리로 데려갔다. 그는 우파스니에게 칸도바 사원을 떠나 사코리에 영구히 머물러 달라고 청했다. 사이 바바와 우파스니는 이 이주에 동의했다. 그러나 우파스니는 마을 외곽의 힌두교 화장터 옆에 머물렀다. 마을 사람들은 그곳에 그를 위해 진흙 오두막을 지어 주었고, 그의 추종자들은 점차 늘어나기 시작했다. 화장터가 다르샨과 축복의 장소로 탈바꿈했다. 얼마 뒤 오두막 맞은편에 작은 사원이 세워졌고, 그 안에는 사이 바바와 우파스니 마하라지의 사진과 그림들이 장식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