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이 카피르(kafir, 이교도 또는 이단자)를 죽이고 이슬람의 신성한 진리를 수호함으로써 낙원에 특별한 자리를 확보했다고 믿었다.
이름 없는 무덤에 죽도록 버려졌음에도 불구하고, 굴룩은 죽지 않았다. 그녀는 죽을 수 없었다. 형체 없으신 하나님을 형체로 드러내야 하는 그녀의 임무가 아직 완수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가 이 시련에서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1900년경 그녀는 남쪽으로 1,000마일 이상 떨어진 봄베이로 무사히 돌아왔고, 시온 근처의 추나 바티라는 거리의 보도에서 살았다.
몇 년 후 펀자브 연대가 푸나로 이동했고, 바로 그 병사들이 그곳에서 바바잔이 살아 있는 것을 보자 그들의 자만심과 잘못된 관념은 완전히 산산조각 났다. 그제서야 그들은 불신자가 바바잔이 아니라 바로 자신들이라는 것을 이해했다. 자신들의 끔찍한 행위를 깊이 뉘우친 그들은 용서를 구하며 스승의 발 앞에 엎드렸다. 연대가 푸나에 주둔해 있는 동안, 그 병사들은 바바잔에게 경의를 표하러 자주 찾아왔다. 일부 병사들은 그녀의 신도가 되어 경호원으로서 그녀를 섬겼다.1
봄베이에서 굴룩은 특히 피드호니 지역을 배회했다. 점차 그녀의 명성이 퍼졌고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쿠툽으로 믿었다. 무슬림들은 그녀를 '하즈랏(Hazrat, 폐하)'라 부르기 시작했고, '바바잔'이라는 이름으로 받들어 모시기 시작했다.2 가끔씩 그녀는 반드라의 성인(聖人) 마울라나 사헵(Maulana Saheb)과 동그리의 성인(聖人) 바바 압두르 레만(Baba Abdur Rehman)과 만나기도 했다. 그녀는 그들을 사랑스럽게 "나의 아이들"이라고 불렀고, 이 태고의 여인이 그들과 함께 있을 때 얼마나 행복한지를 보는 것은 영광스러웠다. 후에 바바잔은 이 두 성인(聖人) 모두에게 하나님-실현을 수여했다.
1903년 4월, 바바잔은 두 번째 메카 순례를 위해 봄베이에서 'SS 하이다리' 호에 승선했다. 매 순간 바바잔이 지복 상태에 흡수되어 있었지만, 배에서 그녀는 아주 정상적으로 행동했다. 그녀는 다른 승객들과 다정히 대화를 나누며 페르시아 시인 하피즈와 루미의 시구를 암송했고, 절대자의 심오한 신비를 쉬운 말로 풀어 설명했다.3 선원들까지 모두 이 노파에게 끌려 그녀의 말을 열심히 들었고, 그녀는 선원들과는 영어로 이야기했다.4
이 항해 중에 한 가지 이례적인 사건이 일어났다. 폭우가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거대한 폭풍이 휘몰아쳤다. 모두가 겁에 질렸다. 사람들은 배가 곧 침몰할 것이라고 확신하며 공황에 빠졌다. 바로 그때, 바바잔이 위험을 아랑곳하지 않는 듯 갑판에 나타났다.
각주
- 1.메헤르 바바의 어린 시절 친구 중 한 명인 베일리 이라니(Baily Irani)에 따르면, 이 병사들은 모두 제1차 세계대전 중 다르다넬스에서 전사했다.
- 2.바바(Baba)는 나이 든 남성이나 아버지 같은 인물을 높여 부르는 우르두어 존칭이다. 접미사 '잔(jan)'이 붙으면 문자 그대로 '사랑하는 아버지'를 뜻하며, 흔히 할아버지라는 의미로 쓰인다.
- 3.하피즈(Hafiz)는 14세기의 완전한 스승 샴스 웃딘 무함마드(Shams-ud-din Muhammad, 1320~1389)의 필명으로, 수피 가잘(ghazal)의 가장 위대한 저자이자 페르시아 최고의 서정시인 중 한 사람으로 꼽힌다. 그의 시집 『하피즈 시집(Divan of Hafiz)』은 걸작으로 널리 평가받는다. 잘랄룻딘 루미(Jalaluddin Rumi, 1207~1273) 또한 완전한 스승 시인이었으며, '회전하는 데르비시(Whirling Dervishes)'로 알려진 교단의 창시자이다.
- 4.'SS 하이다리' 호의 승객 중에는 누르 모함메드 카삼 미타(Noor Mohammed Kasam Mitha), 세트 살레 모함메드(Seth Saleh Mohammed), 그리고 하이더 이브라힘 사야니(Hyder Ibrahim Sayani)라는 데칸 대학(푸나)의 교수와 그의 어머니 및 형제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