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침묵의 시작
1926년· 바바 32세페이지 693 / 5,444
보기에도 끔찍한 상처와 훼손에 우리 사드구루가 어찌 마음 쓰겠습니까? 당신들은 개미나 날파리, 모기를 죽일 때 무엇을 느낍니까? 전혀 없습니다! 푸주한이 닭의 목을 거칠게 비틀어 죽일 때는 마음이 아픕니까? 아닙니다. 그렇다면 인간 살인의 상처와 피, 고통 앞에서만 왜 떨고 두려워합니까? 개미, 파리, 닭, 염소도 인간처럼 생명이 있습니다. 왜 한쪽엔 마음을 두고 다른 쪽엔 두지 않습니까?
당신들이 인간에 비해 동물의 생명을 하찮게 여기듯, 사드구루도 인간의 죽음을 사소한 것으로 봅니다. 그들에게 온 세상은 작은 점 하나와 같습니다. 그렇다면 사람 하나의 죽음을 왜 걱정합니까? 게다가 사드구루에게 육신을 내려놓는 일은 죽음이 아닙니다. 그저 한 형태를 벗고 다른 형태를 입는 것일 뿐입니다. 몸은 영혼을 덮는 외투입니다. 그런 몸이 매일 수십만씩 스러지고, 같은 수가 동시에 다시 몸을 입습니다. 사드구루는 환상에 대해 이미 죽었기에, 참으로 영원 속에 삽니다. 그러니 인간의 몸을 벗고 외투를 갈아입는 일이 그들에게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죽어야 하는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입니다. 몸은 천 번 죽어도 아트마[영혼]는 살아 있습니다. 그것은 결코 죽지 않습니다. 깨달음의 상태에서 몸과 마음이 함께 죽어도 아트마는 영원히 살아 있습니다.
몸은 마음을 위해 살고 일하고 고통받으며, 마음은 영혼을 위해 삽니다. 예를 들어 천을 몸, 몸을 마음, 마음을 영혼으로 놓고 보십시오. 이제 젊고 단정한 옷차림의 처녀가 당신 앞에 선다고 해보십시오. 옷이 몸을 잘 가리고 있을 때는 마음이 특별히 반응하지 않아 억제됩니다. 그런데 바람에 옷자락이 살짝 들려 잠깐 다리가 드러나면, 즉시 마음이 영향을 받아 바람직하지 않은 생각이 치솟기 시작합니다. 그것을 일으킨 것이 무엇입니까? 천, 즉 몸입니다. 천이 몸에 그러하듯 몸도 마음에 그러합니다. 곧 천이 몸에 영향을 주듯 몸도 마음에 영향을 줍니다.
7월 21일과 22일은 힌두교 축제일이었다. 이 성일을 기념해 바바는 아랑가온 사원에 있는 성자 부아지 부아의 사당까지 행렬로 모셔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