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령 네가 분노와 욕정과 탐욕, 혹은 바람직하지 않은 감정에 휩싸인다고 하자. 그것은 마야의 작용이다. 반면 배고픔이나 목마름, 졸림을 느끼는 것은 산스카라 때문이다. 먹고 마시고 자는 것은 삶에 필수이므로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그러나 분노와 욕정과 탐욕은 마음에 들어오는 순간 몰아내야 한다. "마야야, 나가라! 나는 너를 원치 않는다!"라고 말하라.
이 설명 도중 샹카르나트가 들어왔다.1
바바가 농담했다. "샹카르, 칸카르[돌]가 되어라. 그래야 저 마녀 마야의 간계에 흔들리지 않을 것이다!"
바바는 덧붙였다. "돌은 꽃으로 공경받을 수도 있고 오물로 더럽혀질 수도 있지만, 아무 영향도 받지 않는다. 기억하라. 참된 요기란 세상의 어떤 것도 건드릴 수 없는 사람이다. 그는 어떤 환경과 상황에서도 무심하고 흔들리지 않는다."
1926년 7월 1일은 목요일이었고, 평소처럼 만달리 숙소 바닥에는 신선한 소똥이 발라졌다. 스승이 침묵을 시작한 지 거의 1년이 지나 만달리는 그날 바바가 다시 말을 시작하리라 기대했지만, 바바는 오히려 1927년 2월까지 침묵을 지키겠다고 알렸다.
바바는 마즈주브와 완전한 스승, 그리고 보통 인간의 상태 차이를 설명하며 이런 비유를 들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대양 위에서 배를 타고 있다고 하자. 그는 바닷바람과 물 위에 떠 있는 즐거움을 누린다. 하지만 그 사람 자신이 대양이 되어버린다면 배가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가 대양과 그 위대함을 모를 때는 뱃놀이의 즐거움을 누리기 위한 수단으로 배가 필요했다. 그러나 자신이 대양이 된 뒤에도 배에 신경 쓸 이유가 있겠는가? 이것이 마즈주브의 상태다. 그는 배[몸]를 돌보지 않으며, 그 배는 물결에 맡겨져 이리저리 떠돈다.
그러나 사드구루는 배를 돌보고 또 그것을 사용한다. 그는 물 아래에서 배 밑바닥을 붙잡아, 원할 때 원한 곳으로 그것을 움직여 옮길 수 있다. 반면 인류는 목표를 향해 전혀 나아가지 못한 채 이리저리 표류한다. 이것이 마즈주브와 사드구루, 그리고 보통 인간의 상태 차이다. 이 차이는 겉보기엔 사소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상상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나다.
각주
- 1.샹카르나트는 아흐메드나가르 출신의 하리잔(불가촉천민)으로, 메헤라바드로 이주한 사람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