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촌은 어린 소년의 그 마음에 깊이 감동하여 그를 위로하며 말했다. "아이들이 다 자라서 스스로 생계를 꾸릴 수 있을 때까지 돌보고 부양하는 것은 우리의 의무란다."
카쉬나트는 1년간 둘리아에 있는 부모 곁에서 살도록 보내졌지만, 자신이 부모에게 짐이 된다는 생각이 그의 양심을 괴롭혔다. 소년은 우울해졌고 집을 떠나 떠돌이 삶을 살기로 결심했지만, 그렇게 되기까지는 아직 몇 해를 더 기다려야 했다.
카쉬나트의 가슴은 세속적 집착에 반발했지만, 그의 가족은 결혼을 준비했다. 카쉬나트는 자신의 뜻에 반하여 그들의 바람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고, 두르가라는 어린 힌두 소녀와 결혼했다. 당시 관습에 따르면 갓 결혼한 부부는 어린 나이였는데, 카쉬나트는 열네 살이었고 두르가는 겨우 여덟 살이었다. 다만 부부는 더 나이가 들기 전까지는 함께 살지 않았다.
낙담한 카쉬나트는 사업이나 가정을 꾸리는 데 관심이 없었고, 나중에는 아내에게도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다. 그는 강렬한 내적 체험을 하고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누군가가 그의 가슴속에서 노래하고 있었다. 그는 자신이 듣는 목소리가 누구의 것인지 알고 싶었고, 그 노래하는 이(Singer)의 모습을 잠깐이라도 보고 싶었지만 몹시 혼란스러웠다. 어찌할 바를 몰라 가슴의 재촉에 따르기로 한 그는, 아내와 집을 작별 인사도 없이 떠나 걸어서 나식을 향해 방랑했다.
그는 몇 달 동안 나식에서 살았고, 그곳에서 할아버지의 지인 한 사람과 친분을 맺었다. 그는 부모에게 걱정하지 말라고, 모든 것이 잘되고 있다고 편지를 썼다. 한 달 뒤 아버지가 어머니가 중병이라며 돌아오라고 간청하는 답장을 보냈고, 그는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혼한 지 1년 후 그의 어린 신부가 죽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가족은 다시 그에게 두 번째 결혼을 하도록 설득했다.
1885년 카쉬나트는 또 다른 소녀와 결혼했지만, 세속적인 삶을 사는 일은 여전히 그에게 견딜 수 없는 것이었다. 그는 두 번째 아내에게도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았고, 가슴속에 끊임없이 울리는 노래의 메아리 때문에 늘 안절부절못했다. 자신이 느끼는 것이 무엇인지 여전히 어리둥절한 채, 그는 또다시 집을 떠나 방랑했다. 그러나 아무도 찾지 못했고, 그의 가슴이 "누가 나에게 노래하는가?"라고 물어도 대답은 없었다. 카쉬나트는 자신이 겪는 일에 대한 답을 얻지 못했고, 그래서 집으로 돌아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