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의 가디는 돌출된 상판 아래, 캐빈 옆에 놓였다. 손맷돌은 테이블 옆에 고정되었고, 바바는 형 잘바이와 함께 그곳에서 매일 곡식을 갈았다.
바바는 7월 중순부터 좁디에서 책을 쓰고 있었다. 바바는 아침에 글을 썼지만, 감독 업무가 끝난 뒤에는 때때로 좁디로 들어가 문을 닫고 낮에도 집필을 이어갔다. 그때 바바는 책에 무엇을 쓰는지 밝히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그 내용을 읽게 하지 않았다.
1925년 10월 11일 일요일, 아침에 앙갈 플리더의 푸라나 낭독이 있은 뒤 바바와 만달리는 오후에 마을에서 차와 과자를 대접받았고, 이어 성인 부아지 부아의 기일을 기리는 연례 만찬에 참석했다. 아랑가온에서 돌아온 바바는 좁디를 떠나 테이블 캐빈의 "찬장"에서 밤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날 이후 그는 그 비좁은 공간 안에서 계속 글을 썼다.
바바는 테이블 캐빈으로 옮기면서 금식을 시작했고, 무기한 우유 없는 물과 연한 차만으로 지내겠다고 밝혔다. 그는 모두에게 새 거처 근처로 오지 말라고 금하며, 더는 운동이나 놀이에 시간을 낼 수 없다고 말했다.
10월 16일, 만달리 40~50명의 명단이 작성되었고 바바는 그들에게 물과 연한 차만으로 24시간 금식하라고 명령했다.
빛의 축제인 디왈리가 다음 날 거행되었다. 아침에 바바는 학생들과 만달리에게 과자를 나누어 주어, 그 프라사드로 금식을 끝내게 했다. 바바는 굴마이가 가져온 불꽃놀이(스파클러와 폭죽)를 아이들에게 나눠 주었다.
스승이 얇은 사드라를 입은 채 서 있는 동안, 여자들과 남자 만달리가 차례로 작은 그릇의 따뜻한 물을 부으며 의식 목욕을 올렸다.1 다르샨을 온 이들도 바바의 발을 씻길 수 있는 드문 특전을 누렸고, 향수와 향비누에 많은 돈이 들어갔다. 각자가 바바의 발을 씻길 때마다 밴드가 연주했다. 의식 목욕은 물을 붓는 이들에겐 기쁨이었지만, 바바에게는 고통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사랑하는 이들을 기쁘게 하려고 그 시련을 견뎠다. 목욕 후, 푸자와 아르티 의식이 거행되고 푸라나에서 발췌한 부분이 낭독되었다.
각주
- 1.만달리는 1925년 9월 27일 다세라(Dassera) 축일에도 바바에게 이와 유사한 목욕 의식을 행한 바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