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침묵의 시작
1925년· 바바 31세페이지 572 / 5,444
하리잔 소년들은 머리를 자주 깎지 못했기에, 몇 주마다 구스타지와 베흐람지가 이발사 역할을 했다.1
바바가 소년들을 씻기고 있을 때 낯선 방문객이 다르샨을 위해 오면, 그는 먼저 일을 거들라고 하곤 했다. 어떤 이들은 선뜻 응했지만, 어떤 이들은 이 하리잔 아이들을 만지는 것조차 주저했다.
그럴 때 바바는 말했다. "그대가 하나님의 다르샨을 받으러 왔다면, 이 하리잔 아이들이 바로 나의 하나님입니다. 그들을 섬길 마음이 있다면 메헤라바드에 온 것을 환영합니다. 아니라면 집이나 사원에서 그대의 하나님을 예배하십시오. 여기서 그대가 만날 유일한 하나님은 이 아이들입니다."
바바의 말이 지닌 지혜에 놀라고 속으로는 돕고 싶어 하면서도, 대부분은 사회적 조롱이 두려워 선뜻 손을 내밀지 못했다.
떠나기 전 그들이 다시 바바의 다르샨을 청하면, 그는 말했다. "나를 하나님이라 여기고 다르샨을 청하러 왔으면서, 내가 섬기는 이들을 섬기지는 못하시는군요. 그렇다면 다르샨을 요구하는 이 위선은 무엇입니까? 그대의 하나님이 누구든, 그 하나님에게 가서 다르샨을 받으십시오! 내가 말하건대, 여기서 유일한 하나님은 내가 예배하는 이 아이들입니다."
겉으로 드러난 규모만 보면, 인도의 억눌린 사람들을 일으키기 위해 메헤르 바바가 한 일은 더 큰 자선기관들의 활동량과 단순 비교하기 어렵다. 그러나 영적 관점에서 보면, 이 빈곤한 아이들과 함께한 그의 작업의 결실은 시간이 흐르며 서서히 드러났고, 마침내 불가촉천민들이 인도 사회에서 동등한 지위를 얻기 시작했다. 메헤르 바바의 일은 어떤 사회기관의 활동과도 본질적으로 달랐다. 영적 도움과 물질적 도움은 서로 비교될 수 없다. 당시 처지가 참으로 비참했던 인도 하층민을 위한 바바의 노력은 세속적 사람들의 영역을 넘어선 것이었고, 그 결실도 분명했다.
메헤라바드에서는 음악과 노래 프로그램 외에도, 바바가 가끔 봄베이에서 무성영화를 들여오면 찬지와 나발이 우체국 건물 벽에 상영했다. 많은 마을 사람들이 별빛 아래 야외 상영을 보러 모였다. 대부분에게 그것은 생애 첫 영화 관람이었다. 이처럼 바바는 마을 사람들에게 현대적 오락을 제공하는 동시에, 이 매체를 통해 순박한 사람들을 자신에게 끌어당기고 그와 함께하는 사하바스(스승과 더불어 지내는 친교)의 기회를 주었다.
각주
- 1.베흐람지는 얼마 전 페르시아에서 돌아와 메헤라바드에서 만달리에 다시 합류해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