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침묵의 시작
1925년· 바바 31세페이지 565 / 5,444
바바는 메헤라바드에 돌아오자마자 며칠간 오두막에 들어가겠다고 밝혔고, 파드리가 밖에서 경계하기로 했다. 그는 람주와 가니에게 이렇게 썼다.
파드리가 당신들에게 가지 못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미리 전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나는 내일 방에 들어가, 하나님 뜻이라면 2월 1일까지 그 안에 문을 잠그고 머무를 것이고, 파드리는 방 밖에 있을 것입니다.
어떤 일에도 기죽지 말고, 자유로운 마음과 용기 있는 가슴으로 자기 일을 계속하십시오. 내가 살아서 나온다면, 2월에 당신들을 만나 이런저런 일을 함께 의논하겠습니다.
— 메르완
아흐메드나가르로 돌아온 뒤 바바는 메헤라바드를 자신의 영구 본부라 부르기 시작했고, 이제 그곳에서 공개 다르샨을 열겠다고 했다. 아랑가온과 아흐메드나가르뿐 아니라 먼 곳에서도 다양한 카스트와 종파의 사람들이 그의 다르샨을 받으러 정기적으로 오기 시작했다. 펜두를 포함해 남성 만달리 전원이 메헤라바드 생활로 돌아왔다. 아랑가온 아이들은 바바를 그리워했기에 특히 기뻐했다. 바바가 그곳에 있으니, 아이들은 이제 그와 함께하는 즐거운 시간은 물론 맛있는 간식까지 기대할 수 있었다.
어느 날 바바가 아이들에게 물었다. "내일 오후에 다들 여기로 올 수 있겠습니까?"
한 아이가 답했다. "염소 풀 먹이러 가야 해서 못 와요. 안 가면 부모님이 때려요."
바바는 아이들에게, 부모님이 허락하시면 오라고 자신이 초대했다는 말을 부모님께 전하라고 했다. 다음 날 아랑가온 아이 30명이 메헤라바드에 왔고, 바바는 아이들을 하나씩 목욕시키고 새 옷을 입힌 뒤 과자를 주었다. 이 소문이 퍼지자 가난한 마을 사람들이 남녀노소 더 많이 와서 옷을 요청했다. 바바는 그들에게 조금 기다리라고 했다. 잠시 뒤 어느 날, 바바는 마을 전체에 옷을 나눠 주고 잔치를 베풀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이 더 늘자, 그들을 위한 학교를 열자는 제안도 나왔다.
1925년 2월 바바는 다울랏마이, 메헤라, 나자를 며칠간 사코리로 보냈다. 그들이 도착하자 우파스니 마하라지는 메헤라에게 요즘 어디서 지내는지 물었다. 메헤라는 "메헤르 바바와 함께 지냅니다"라고 답했다.
그때 우파스니 마하라지의 핵심 여성 제자였던 두르가바이 카르마르카르는 메헤라를 몹시 아껴 사코리에 남으라고 권했다.
며칠 뒤 바바는 마사지를 사코리로 보내 메헤라 앞으로 편지를 전했다. "사코리에 머물고 싶다면 그래도 됩니다. 하지만 당신이 메헤라바드로 돌아오면 나는 기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