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저녁 8시, 바바와 베흐람지, 파드리, 구스타지는 바로다에 도착해 다시 구자라트 힌두 로지에 묵었다. 사다시브는 기차에 남아 곧장 푸나로 돌아갔다. 다음 날 오후 4시, 그들은 파바가르를 향해 걸어 나섰고 밤 9시에 산기슭에 도착했다.
좁은 정글 길로 짐을 옮겨야 했기에, 파드리는 바바가 넘어질 수 있다며 구스타지에게 길을 비출 랜턴을 켜라고 했다. 그러나 구스타지는 길을 가는 다른 사람들의 랜턴 불빛으로 충분하다며 등유를 낭비할 필요가 없다고 고집했다. 그들이 한 사람을 따라가기 시작하자 그는 빠르게 앞서 가 버렸고, 일행은 어둠 속에서 비틀거리며 걸어야 했다. 파드리는 넘어져 다리를 다쳤고, 이후 구스타지에게 분노를 터뜨렸다. 마침 지나가던 무슬림 경찰관이 그들을 다람살라로 안내해 주어, 그날 밤 그곳에서 쉴 수 있었다. 그곳은 정글 한가운데 있어 야생동물이 자주 출몰하므로, 경찰관은 밤에는 절대 밖으로 나가지 말고 실내에 머물라고 강하게 당부했다.
8월 29일 오전 6시에 일어난 그들은, 정상부가 짙은 안개에 덮인 가파른 산을 곧바로 오르기 시작했다. 바바는 계속 이질로 고통받으며 점액성 액체를 배출했고, 복통은 몇 분간 걸음을 멈출 때만 조금 가라앉았다. 그런 상태에서도 그 험한 산길을 오르는 속도는 바바가 가장 빨랐다. 그들은 길에서 두 번 차를 마시며 쉬었는데, 닐기리 산행 때와 달리 여기서는 좋은 차를 구할 수 있었다. 다만 바바는 출발 전에는 마시지 못하게 했다.
세 마일을 오른 끝에, 칼리에게 봉헌된 힌두 사원이 있는 정상에 도착했다. 연례 축제 때는 수천 명이 몰려들지만, 평소 하루 순례객은 수십 명 정도였다. 바바와 만달리는 칼리 사원 안으로 들어가 신성한 어머니의 성소에 절했다.
사원 너머에는 사잔 샤 왈리라는 무슬림 성자의 다르가가 있었다. 바바는 다시 사람들을 이끌고 들어가 모두 그 성자의 무덤에 머리를 숙이게 했다.
그들은 잠시 앉아 요새 폐허를 바라보고 언덕과 계곡의 아름다운 풍경을 즐겼다. 쉬는 동안 바바는 푸나 근처 신하가드에 정착해 직접 지은 오두막에서 살자는 이야기를 또 꺼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