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들은 파트리에서 9마일을 걷는 동안 무거운 짐을 나르느라 몹시 지쳐 있었다. 공용 우물에서 씻은 뒤 힌두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 내내 역 대합실에서 쉬었다.
저녁에는 파드리와 베흐람지가 묵을 만한 숙소를 찾아 나섰다. 그들은 힌두 다람살라를 찾았지만, 관리인은 의심하며 물었다. "당신들은 어느 공동체 사람이오? 힌두처럼 보이지 않는데."
파드리는 자신들이 파르시라고 답했다. 관리인은 어리둥절해하며 물었다. "파르시라고? 그런 공동체는 처음 듣는데. 미안하지만 여기서는 묵게 할 수 없소." 파드리는 자신들이 사실 조로아스터교도라고 설명하며 간청했다. 하지만 관리인은 말했다. "사실대로 말하시오. 힌두요, 무슬림이오?"
"둘 다 아닙니다. 저는 조로아스터교도입니다!" 파드리는 거듭 강조했다. 그리고 증명하려고 셔츠를 들어 올려 허리에 맨 쿠스티(성스러운 끈)를 보여 주었다. 관리인은 파드리가 말썽을 일으킬 무슬림일까 걱정했지만, 아니라는 확신이 들자 다람살라 베란다를 쓰게 해 주었다.
관리인이 숙박부를 내오자, 파드리는 "파레둔 나오로지 드라이버"라고 서명했고 베흐람지는 "베헤람 파레둔 이라니"로 등록했다.
인도에서는 아버지 이름을 중간 이름으로 쓰는 경우가 흔해서인지, 관리인은 다시 혼란스러워하며 베흐람지를 가리켜 파드리에게 "당신이 이 사람 아버지요?"라고 물었다.
파드리는 웃으며 답했다. "보시다시피 제가 훨씬 젊은데 어떻게 아버지겠습니까?"
바바는 베란다에서 쉬어 보려 했지만, 근처 하수구 악취가 심해 다람살라에 머물지 않기로 했다. 파드리는 역으로 가서 이틀 동안 대합실에서 잘 수 있게 허락을 구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마침 역에 현지 파르시가 한 명 있었고, 파드리가 역장과 이야기한 뒤 역장은 그 파르시에게 사실 확인을 요청했다.
파드리가 자신들은 봄베이에서 온 조로아스터교도라고 거듭 말하고 쿠스티까지 다시 보여 주었지만, 그 남자는 납득하지 않고 "조로아스터교도가 왜 하리드와르에 가느냐? 봄베이 사람이라고 다 파르시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그 파르시의 의심과는 별개로 역장은 그들이 대합실을 쓰도록 허락했다.
다음 날인 1924년 8월 17일, 사다시브에게 베나레스에서 합류하라는 전보가 보내졌다. 바바는 그날 남은 시간을 사두들에게 절하며 보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