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력과 비폭력
인간은 구호 같은 말에 집착하여, 그 말들이 담고 있는 살아 있는 인식과 자기 행동을 직접 연결하지 않은 채 거의 기계적으로 그 말들에 따라 행동하려는 경향이 있다. 말은 삶 속에서 저마다의 자리와 쓰임이 있다. 그러나 행동이 지혜로우려면, 그 말들이 전달하려는 의미를 세심하게 분석하고 분명히 규정하는 일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처럼 탐구가 필요한 말들 가운데, 폭력과 비폭력만큼 중요한 것은 거의 없다. 이 말들은 특정한 행동뿐 아니라 삶 전체의 기조를 형성하는 이념들과도 직접 관련되어 있다.
영적 삶은 인식의 문제이지 규칙에 기계적으로 순응하는 문제가 아니다. 설령 그 규칙들이 가장 높은 가치를 나타내기 위한 것이라 해도 마찬가지다. 영적 삶은 모든 말과 공식화를 넘어서는 이해를 뜻한다. 모든 말과 공식화에는 진리를 제한하려는 경향이 있다. 그러므로 이러한 공식화의 밑바탕에 있는 정신을 드러내고자 하는 사람들은, 형식화된 원칙들을 면밀히 분석하고 삶에서 가져온 구체적인 예들과 끊임없이 맞닿아 있음으로써 그 분석을 보완해야 한다. 이 점은 폭력과 비폭력이라는 상반된 개념을 바탕으로 공식화된 삶의 지도 원칙들에서 특히 그렇다.
폭력과 비폭력이라는 말은 일상적 용례에서 실제 삶의 매우 다양한 상황들에 적용된다. 그러므로 그런 다양한 상황들을 살피고 그것을 출발점으로 삼지 않으면, 관련 문제에 대한 설명은 완전할 수 없다. 그러나 설명을 위해 이 말들이 포괄하는 모든 가능한 경우를 일일이 다 열거할 필요는 없다. 가장 대표적인 몇 가지 상황만 살펴보아도 충분하다. 여기서 언급된 대표적 상황들은 폭력과 비폭력의 개념을 둘러싼 근본 가치를 풍부하게 비춰 줄 수 있기 때문에 선택되었다.
메헤르 바바의 메시지는 이어서 인간의 고통과 폭력에 관한 다섯 가지 반복적 상황을 설명했다.
익사자를 돕는 첫 번째 상황을 보자. 수영할 줄 모르는 한 사람이 호수에 빠져 익사할 위험에 처해 있다고 가정하자. 그리고 근처에는 수영을 잘하며 그를 익사에서 구하고자 하는 다른 사람이 있다. 익사하는 사람은 자신을 도우러 온 이를 필사적으로 붙잡으려는 경향이 있다. 그런데 그 붙잡음이 너무 서툴러서, 익사자를 구하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그를 도우러 온 사람까지 익사하게 만들 수도 있다. 그러므로 익사자를 구하려는 사람은 그를 구조하기에 앞서 머리를 쳐서 의식을 잃게 해야 할 수도 있다. 그러한 상황에서 익사하는 사람의 머리를 치는 행위는 폭력이라고도 비폭력이라고도 볼 수 없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