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무의 부름이 분명하고 절박할 때에는 어떤 희생이나 고통도 지나치지 않다는 믿음을 가지고, 사람들은 용기와 평정심으로 전쟁의 사태에 맞서야 한다. 직접적이고 공격적인 침략을 당했을 때에는, 다른 대안이 없다면 전쟁에 직접 참여해서라도 그것에 저항하는 것이 모두의 분명한 의무이다. 그러나 그렇게 저항할 때에도 그들은 오직 의무감에서만 행동해야 하며, 영적 무지 속에서 행동하는 침략자에게 어떤 증오나 쓰라림도 품지 말아야 한다. 또한 그들은 공습이나 육해전으로 인해 가해지는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고통에 무감각해서는 안 된다. 오히려 그들은 각자의 능력과 소질에 따라, 부상당하고 황폐해진 전쟁의 희생자들에게 가능한 모든 도움을 베풀어야 한다.
일반적으로 영적 구도자들은 순전히 물질적인 복지에는 무관심하다. 그들은 대부분의 전쟁이 순전히 물질적 고려에서 비롯된다는 이유로, 전쟁과 전쟁 수행 자체에도 무관심해지기 쉽다. 그러나 영성을 물질적 고려와 분리하는 것은 잘못이다. 물질적 고려에도 영적인 측면과 중요성이 있다. 내면생활의 초감각적 실재에 몰두하는 영적 구도자들조차, 특히 자신이 전쟁에 직접 관련될 때에는 전쟁을 외면할 여유가 없다. 영적 구도자들은 무한한 영혼의 실재와 영원성 위에 자신의 입장을 세운다. 그러므로 영의 요구에서 나오는 의무를 위해 모든 것을 거는 일은 그들에게 쉬워야 한다.
참으로 이해하면 모든 갈등과 전쟁은 신성한 놀이의 일부로 보인다. 따라서 그것들은, 이원성의 환상 세계를 만들고 유지하는 우주적 힘인 마야의 도움을 통해 현현계에서 자신을 드러내는 신성한 의지의 결과이다. 신성한 놀이에서 마야가 수행하는 목적은 두 가지이다. 첫째, 마야는 영혼을 환상의 미로에 가두는 도구가 될 수 있고, 둘째, 영혼을 영적 무지와 속박의 손아귀에서 풀어 주는 도구가 될 수도 있다. 마야를 무시해서는 안 된다. 마야는 초연함과 이해를 가지고 다루어야 한다. 전쟁은 마야의 작용이다. 그러므로 전쟁은 마야의 창조물에 대한 집착에서 비롯되느냐, 초연함에서 비롯되느냐에 따라 영적으로 재앙이 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