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는 메헤라에게 굴마이가 자기 머리를 얼마나 곱게 빗겨 주는지 자주 말하곤 했다. 굴마이는 퀘타에 있는 동안 그 일을 계속 맡았다. 굴마이가 없을 때는 구스타지가 그 일을 보았다. 나중에는 메헤라가 이 특별한 일을 맡아 끝까지 계속했다.
어느 날 루시는 남녀 만달리를 위해 근처 산으로 소풍을 마련했다. 바바는 마치 사슴처럼 날렵하게 산을 올랐지만, 만달리는 모두 애썼어도 아무도 정상에 닿지 못했다. 산 위에 선 바바는 장엄해 보였다. 마치 자신의 행복한 광채를 인류에게 드러내며 삶의 목표는 언제나 기쁘게 사는 것이라 선언하는 듯했다! 태양빛은 경배하듯 바바의 아름다운 발에 입맞추었고, 바람은 그의 금빛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뒤로 넘겨 세상에 그의 신성한 모습 한 자락을 드러냈다.
에이지는 "얼마나 아름다우신가!"라고 외쳤다.
달에 홀린 인도의 붉은다리자고새처럼, 만달리는 바바 아래쪽에서 경이와 흠모 속에 그를 바라보았다. 사랑의 바람이 그들의 가슴을 스쳤고, 기쁨의 눈물로 눈시울이 젖었다. 그의 유영하는 시선의 빛이 그들의 가슴을 어루만지며 꿰뚫었다. 모두가 그 시선의 부드러운 관통에 상처 입었다. 그토록 끌려 눈을 뗄 수가 없었다. 그의 사진이 찍히긴 했지만, 카메라로 어찌 신성의 얼굴을 담을 수 있겠는가? 그의 광채는 경이로웠고, 그 후광의 빛은 마음이 순수한 이들만 볼 수 있었다.
메헤르 바바는 1924년 7월 16일 카라치로 가기로 결정했다. 너버스의 상태는 여전히 위중했다. 떠나기 전 바바는 피로즈샤와 함께 파르시 묘지에 가서 너버스를 묻을 자리를 고르고 막대기로 표시해 두었다.1 바바는 피로즈샤에게 2500루피를 주었는데, 500루피는 너버스 묘비용, 2000루피는 퀘타 파르시 자선신탁 기금이었다.
그리고 만달리에게 말했다. "용기를 잃지 마라. 마지막 순간까지라도 너버스를 살리기 위해 가능한 모든 수단을 다해라."
하지만 뒤에 바바는 이 경우는 희망이 없다고 인정하며 너버스가 곧 죽을 것임을 내비쳤다. 그는 너버스의 장례 뒤에는 어쩔 수 없이 가라앉을 분위기를 풀기 위해 영화관에 가라고까지 말했다. 아마 영화배우가 되고 싶었던 너버스의 이루지 못한 꿈을 기리는 뜻도 있었을 것이다.
그날 오후 바바는 몇몇 만달리와 함께 카라치로 떠났다. 마흐 역에 도착했을 때 그는 너버스 사망 전보를 받았다.
각주
- 1.보통 조로아스터교인들은 사후 침묵의 탑으로 옮겨지지만, 당시 퀘타에는 침묵의 탑이 없었다. 5년 후인 1929년, 퀘타 방문 시 바바는 너버스의 무덤을 찾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