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는 하미르푸르 공동체 사업인 메헤르푸리에 대해 푸카르와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 계획을 서둘러 완성하라고 재촉하면서, 바바는 개소 시기를 1970년 11월로 정했다. 바바는 또 푸카르와 케샤브에게 자신을 기리는 멜라(축제)를 정해진 순환에 따라 열라고 조언했다. 한 해는 메헤르푸리(하미르푸르), 다음 해는 메헤르 담(나우랑가), 그 다음 해는 메헤라스타나(마헤와)에서 여는 식이었다. 그들은 행사 일정을 짜서 바바에게 제출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라는 지시를 받았다.
바우가 힌디어로 번역한 《길손들》의 제목은 《파틱》이었고, 그것이 완성되었다. 또 힌디어 노래책 《메헤르 기티카》와 가잘 모음집 《메헤르 사로드》도 완성되었다. 바바는 세 원고를 케샤브에게 건네며 각각의 제목도 직접 붙여 주었고, 가능한 한 빨리 하미르푸르에서 인쇄하라고 지시했다.
바우가 쓰라는 지시를 받은 책은 무엇이든 인쇄에 넘기기 전에, 바바는 처음부터 끝까지 낭독되는 것을 들었다. 프랜시스와 에루치, 마니가 쓴 글도 마찬가지였다. 그때까지 바우는 힌디어로 거의 열두 권에 가까운 책을 썼고, 이 일에 몹시 진력이 나 있었다. 그는 가잘 쓰기를 그만두었지만, 메헤라자드로 돌아온 뒤에도 바바는 여전히 바우에게 매일 한 줄씩 주었다. 한 번은 바바가 프랜시스와 바우 둘 다에게 「데르비시」에 관한 가잘을 쓰라고 했고, 그 마지막 줄은 프랜시스에게는 영어로, 바우에게는 힌디어로 주었다.
때때로 바우는 바바가 준 한 구절을 바탕으로 가잘을 지어 바바에게 읽어 주곤 했지만, 대체로는 그 구절들을 모아 두기만 하고 가잘 쓰기는 미뤘다. 더 급히 해야 할 일이 있었기 때문이다.1 바바는 4월에 다르샨을 주기로 결정했고, 정해야 할 일이 여러 가지 있었다. 그래서 이 문제를 위한 회의가 예정되어 있었다.
이 기간에 와만이 다른 일로 자리를 비우면, 아디는 때때로 마넥에게 편지와 전보를 들려 메헤라자드로 보냈다. 그 전해에 바우는 힌디어 아르띠 한 편을 썼는데, 제목은 《아디 사체타나》였다. 1968년 10월 어느 날, 마넥이 아버지 루스톰 카카와 함께 왔을 때 바바는 마넥에게 바우의 아르띠에 곡을 붙이라고 했다.
각주
- 1.이 구절들에서 지은 가잘들은 나중에 《메헤르 로샤니》(메헤르의 광휘)라는 제목으로 출판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