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무렵 샘 케라왈라의 휴가가 끝났고, 그는 비행기로 이집트에 가서 M. V. 파르바티 자얀티 호에 승선했다. 거기서 그 배는 봄베이를 향해 항해했다. 몇 달 전 샘이 메헤라자드에서 바바를 만났을 때, 바바는 1968년 2월 21일에 그가 어디에 있을지를 자신에게 꼭 알려야 한다고 강하게 지시했다. 그 소식은 적어도 21일보다 사나흘 전에 바바에게 도착해야 했다. 바바가 샘에게 그런 지시를 내린 것은 이것이 처음이었고, 그것도 바바가 매우 엄격한 은둔 중이어서 모든 서신 왕래가 완전히 중단된 때의 일이었다.
그러나 바바는 말했다. "그 규칙은 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샘은 반드시 그날 자신의 행방을 내게 알려야 한다."
그래서 2월 18일 샘은 바바에게 전보를 보내 자신이 봄베이로 가는 길에 있다고 알렸고, 아울러 생일을 맞은 바바에게 사랑과 경의를 전했다. 샘의 배는 다음 날 대서양으로 들어섰다. 거센 강풍이 불고 진눈깨비와 소나기가 몰아쳤으며 시야는 극도로 나빴다. 그들은 배의 정확한 위치를 확인할 수 없었고, 그 결과 계산상 예상한 것보다 훨씬 더 해안 가까이로 표류하고 말았다.
2월 21일 오전 8시 30분, 샘이 탄 배는 바위투성이 얕은 여울에 걸려 좌초했다. 그때부터 그날 밤 8시 30분쯤까지 배는 거친 파도에 심하게 얻어맞았다. 다행히도 그날 밤 만조가 되었을 때 그들은 배를 여울에서 빼낼 수 있었고, 배는 겨우겨우 모로코 카사블랑카 항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선사 직원들과 보험 조사원들이 배에 올랐다. 화물을 하역하는 동안, 선체의 금속판 서너 장이 리벳이 모두 부러진 채 풀려 있는 것이 발견되었다. 선원들은 그 판들이 제자리에 그대로 붙어 있어, 배가 자체 동력으로 거의 70마일이나 항해할 수 있었다는 사실에 놀랐다. 그 배는 나중에 수리가 불가능한 것으로 판명되어 전손 처리되었다.
샘은 자신들을 구한 것이 바바의 손길임을 알았고, 카사블랑카에서 바바에게 편지를 보내 모든 상세한 경위를 전했다.
이에 바바는 다음과 같은 전보를 보냈다. "당신의 생일 축하 전보와 편지를 받았다. 걱정하지 마라. 당신과 파르바티 자얀티 호의 모든 이에게 내 사랑과 축복을 보낸다. 은둔 중인 메헤르 바바."
1968년 2월 20일부터 바바는 다가오는 생일 축하 행사 때문에 만달리 홀에서 하던 아침 은둔 작업 시간을 중단했다. 다음 날 그는 아디에게 전달할 회람을 구술했고, 그것은 12일 뒤인 3월 4일에 타자되고 인쇄되어 전 세계로 우편 발송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