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은 자기가 빨리 떠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가 떠나기 전에는 여자들이 나오지 않으므로, 바바가 아무 부축도 없이 서 계셔야 했기 때문이다. 그는 남자들이 있는 쪽으로 성큼성큼 돌아가기 시작했지만, 바로 그때 홀에서 누군가 바바가 그를 부른다고 외쳤다. 그가 돌아보니 바바가 몸을 돌린 채 손가락을 튕기며 그를 부르고 있었다. 바바는 그를 다시 껴안고 싶어 했던 것이다. 스티븐스가 그에게 다가가자, 바바는 그를 몇 차례 더 껴안았다. 그러고 나서 바바는 떠나라고 손짓했다. 순간 한 생각이 스티븐스의 마음을 스쳤다. "맙소사, 바바께서 마치 이번이 우리 둘의 마지막 만남인 것처럼 행동하시는군." 그러나 그는 그 생각이 들자마자 곧 떨쳐버렸다. 이번은 그가 바바를 뵈려고 인도에 온 열 번째 여행이었고, 실제로 그것이 마지막이었다.
고허는 바바에게 필요한 의료용품과 식이 물품을 보내는 일에 관해, 간호사인 아델 월킨과 정기적으로 서신을 주고받고 있었다. 8월 12일 아델에게 보낸 편지에서 바바의 건강 상태를 설명하며, 고허는 이렇게 썼다.
사랑하는 바바는 요즘 몹시 피곤해 보이신다. 고관절 통증은 좋아졌고 조금 걷기도 하시며, 휠체어는 사용하지 않으신다. 경추 부위의 통증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다. 우리가 그분의 이 통증을 없애 드리는 데 할 수 있는 일은 거의 없다. 우리 의사들 또한 때로는 그분 앞에 서서 그분이 고통받으시는 모습을 지켜보면서도 그 고통을 없애 드릴 수 없다는 사실에 너무나 어리석고 무력하게 느껴진다. 바바는 목의 통증이 당신이 원하시는 동안 계속될 것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해 오셨다. 그것은 인류를 구속하기 위해 스스로 짊어지신 그분의 무한한 고통이 육체적 차원에 비친 한 반영일 뿐이다.
1966년 8월 13일 토요일, 나리만과 아르나바즈가 열흘간 머물기 위해 메헤라자드에 왔다. 페람도 해마다의 20일 체류를 위해 그들과 함께 왔다. 마누 제사왈라도 몇 주 동안 메헤라자드에 머물고 있었다.
바바를 만난 뒤 돈 스티븐스는 코친으로 떠났다가 봄베이로 갔고, 거기서 로버트 드레이퍼스, 앨런 코헨, 짐 맥그루의 친구인 릭 채프먼을 만났다.
스물세 살의 프레더릭 "릭" 채프먼은 전년도에 보스턴에서 바바에 대해 알게 되었다. 그는 1966년 6월 하버드를 졸업했고, 인도에서 1년간 가르치는 풀브라이트 장학금을 받았다. 그는 바바가 은둔 중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바바를 직접 만나지 못하리라고 충분히 예상하면서도, 바바를 만난 사람들을 가능한 한 많이 만나고 싶어 특별히 인도로 가기를 지원했다. 그는 아디에게 편지를 써서 자신의 계획을 알리고, 인도에 머무는 동안 연락할 수 있을 바바의 연인들의 이름과 주소를 요청했다.
릭은 1966년 6월 20일 인도에 도착했고, 델리와 스리나가르에서 2주간의 오리엔테이션을 마친 뒤 구자라트 아메다바드의 H. K. 아츠 칼리지에 교사로 배정되었다. 그는 8월에 열흘의 휴가가 있었고, 그 시간을 봄베이와 푸나에서 바바의 연인들을 찾아보며 보내기로 했다. 릭은 에루치에게 이렇게 썼다. "바바께서 저에게 내리신 명령은, 그분이 직접 부르시기 전까지는 그분께 가지 말라는 것이었습니다. 물론 저는 그분의 완전한 뜻에 순종할 것입니다."
릭 채프먼이 인도에 와 있던 처음 여섯 주 동안 바바는 그를 부르지 않았다. 그러나 8월 10일 아침, 그가 봄베이에 도착해 빅토리아 기차역에서 소랍지 시간포리아와 키신찬드 가즈와니의 마중을 받았을 때, 릭은 이런 말을 들었다. "바바께서 8월 17일에 당신을 보러 오라고 부르셨다고 들었습니다!" 릭은 충격과 기쁨이 한꺼번에 밀려와, 그처럼 특별하고 뜻밖의 소식을 거의 받아들이지 못할 정도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