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는 짐을 가까이 부른 뒤, 그를 안고 입맞추고 내보냈다. 짐은 그날 오전의 남은 시간을 잘바이와 함께 푸나 주변의 여러 바바 관련 장소를 둘러보며 보낸 뒤, 방갈로르와 델리를 거쳐 5월 1일 미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이렇게 맺는다.
그 면담에서 가장 강하게 남은 기억은 바바의 현존에 대한 기억이다. 어떻게 설명할 수는 없지만, 바바는 말 한마디 없이도 나를 온전히 사랑하고 있으며 내가 그분을 신뢰해도 된다는 것, 그리고 그분이 끊임없이 영원히 누리는 지복을 맛보기 위해서라면 무엇이든, 말 그대로 무엇이든 견디고 고통받고 헤쳐 나갈 가치가 있다는 것을 내게 전해 주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바바는 내게 한 가지를 분명히 알게 해주었다. 곧 그분 자신인 그 길의 끝에는 경이로울 만큼 아름다운 무엇이 있다는 것이다. 바바는 그것을 이미 알고 있는 내면의 어떤 것을 일깨웠다.
나는 마스트들이 왜 그분을 위해 자기 삶까지 내던지는지 이해할 수 있다. 가까운 제자들이 왜 그분께 돌아가 그분과 함께하며, 그분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바라지 않는지 이해할 수 있다. 그분 사랑의 포도주를 한 모금 맛보니, 나는 그 술통 전부를 원하게 되었다. 그분을 있는 그대로 볼 수 있는 날을 나는 얼마나 갈망하는가.
짐은 바바에게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언젠가 아무것도 아닌 존재가 될 만큼 충분히 커지기를 바랍니다."
아디를 통해 바바는 이렇게 답했다. "언젠가 그렇게 될 것입니다."
람 긴데 박사는 1966년 4월 말 구루프라사드에서 바바를 잠시 뵙는 것이 허락되었고, 그 만남 직후 봄베이로 돌아갔다. 아디는 4월 23일 평소 하던 일을 위해 불려 왔다. 아디는 5월 5일 하이데라바드로 가는 길에 다시 돌아왔는데, 그곳 메헤르 비하르에서 열리는 행사에서 연설할 예정이었다. 메헤르 비하르에 설치할 은도금 파두카 한 켤레(옛식 차팔)가 구루프라사드로 보내졌고, 바바는 5일에 그것을 발로 만졌다. 돈 역시 이 무렵 구루프라사드에서 바바를 뵙도록 불려 왔다. 아디는 5월 9일 구루프라사드로 돌아와 바바에게 진행 경과를 보고했다.
한편 쉴라 칼추리의 귀는 곪아 고름이 가득 찼고, 그녀는 심한 통증을 겪고 있었다. 유양돌기 수술이 필요했고 수술은 푸나에서 받을 예정이었으므로, 바바는 그녀와 라마, 메헤르나트를 불러 구루프라사드에 머물게 했다. 보통 그들이 바바의 다르샨을 위해 올 때마다, 라마의 형제 디라지가 근처 호텔에 묵을 수 있도록 주선하곤 했다. 그러나 그해에는 바바와 함께 머물 기회를 얻었고, 그 뒤 여러 해 동안도 그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