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나 이 렌디 의식에는 영적인 신비가 담겨 있었다. 사이 바바는 한번 이렇게 설명한 적이 있다. "내가 대변을 보는 동안 나는 내 압달들[내면계의 영적 대리자들]에게 그들의 임무를 지시한다. 행렬 중 울리는 음악 소리를 통해 그들을 부르는 것이다."
사이 바바는 유머 감각이 뛰어난 사람이었다. 그는 종종 헌신자들과 농담을 주고받으며 그들의 약점을 놀리곤 했다. 그러나 죽을 때까지 단순한 파키르의 엄격한 금욕 생활을 유지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곤 했다. "하나님도 가난한 파키르다. 하나님이 가난하시니, 나도 가난하다."
사이는 같은 카프니를 너무 해지고 찢어질 때까지 입어서, 어느 제자가 억지로 벗겨 내고 새것을 입혀야 할 정도였다. 그 뒤에도 사이는 종종 바늘과 실을 들고 앉아 인내심 있게 그것을 꿰매곤 했다. 그 옷은 젊은 시절 고팔 라오에게서 받은 바로 그 옷이었다. 나중에 완전히 누더기가 되자, 그는 조각들을 꿰매 이어 머리에 두르는 스카프 터번을 만들었다.
사이 바바는 힌두교와 이슬람교의 특성이 어우러진 독특한 인격을 지녔고, 두 신앙 모두에 추종자들이 있었다. 어떤 무슬림에게도 고기를 먹지 말라고 금한 적이 없었고, 때로는 정통 브라만 사제들에게 그들의 뜻에 반하여 특정 비채식 음식을 먹으라고 명하기도 했다. 때로는 직접 고기 요리를 해서 모인 사람들에게 나누어 주기도 했다.
그의 눈은 늘 강렬하고 빛났지만 성품은 다정했다. 그의 재치와 매력은 사람들이 그 앞에 오자마자 마음을 놓게 했다. 개인적인 생활 습관은 엄격했지만 그의 아쉬람은 격식에 얽매이지 않고 활기가 넘쳤다. 하루에도 여러 차례 아르티가 열렸고, 모인 이들이 바잔을 부르고 라마야나를 비롯한 영적 문헌과 경전을 함께 읽으며 토론했다.
사이 바바의 성품은 온화하고 관대했지만, 때때로 그는 잘랄리(jalali, 신의 '위엄·위력·준엄'의 측면), 곧 불같은 면을 드러내어 누군가의 잘못에 격노하곤 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사람들이 사이 바바의 다르샨을 받으러 오면, 그는 흔히 지갑이나 주머니의 돈을 모두 꺼내 닥쉬나(dakshina, 스승에게 바치는 금전적 예물)로 자신에게 내놓으라고 요구하곤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