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발푸르의 무니라지가 바바에게 언제 침묵을 깰 것인지 물었다.
바바가 대답했다. "나 또한 침묵을 깨고 싶어 간절하다. 그때가 되면 내가 자유로워지고 세상 역시 압박에서 벗어나 자유로워질 것이다. 내가 그토록 오랜 세월 침묵을 지켜 온 데에는 다 이유가 있다. 내가 침묵을 깨면 그 영향은 우주적일 것이다.
"아무도 내가 얼마나 고통받고 있는지 모른다. 나의 고통은 육체적인 것만이 아니라 정신적이고 영적인 것이기도 하다. 너희의 정신적 고통과 영적 고통과 나의 고통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다. 나의 정신적 고통이 매우 극심한 것은 오늘날 세상에 넘쳐나는 가짜 성자들 때문이다. 나의 영적 고통은 내가 내 안에서는 자유롭지만, 너희 안에서는 속박되어 있음을 알기 때문이다."
가득 찬 방을 바라보며 바바가 말했다. "오늘 오후에는 스무 명 정도만 부른 줄 알았는데 여기에 백오십 명쯤 와 있구나!"
바바는 그 자리에 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사람들이 몇 명 있다고 말했다.
그 가운데 한 사람인 무르티 박사에게 바바가 물었다. "철학에서 무엇을 배웠습니까?"
무르티가 대답했다. "그것을 잊는 법을 배웠습니다!"
대화가 봄베이 대신 12월에 아흐메드나가르에서 열릴 서양 사하바스로 옮겨 가자, 바바는 서양에서 온 연인 약 250명이 참가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는 말했다. "내 연인들이 사하바스를 위해 나를 미국으로 초대하고 있지만, 나는 이제 인도를 떠나지 않을 것이다."
오후 4시 50분에 바바는 옆방을 떠났고, 모인 이들은 흩어졌다.
다음 날인 1965년 5월 4일 화요일 오전 7시 20분에 바바는 옆방으로 들어갔다.
그는 해리 켄모어에게 물었다. "내가 얼마나 고통받으면서도 겉으로는 행복한 사람처럼 보이는지 짐작이나 하겠느냐?"
켄모어가 대답했다. "그 모든 걸 그냥 끝내 버리시면 안 됩니까?"
에루치가 끼어들었다. "그렇게 되면 이 모든 놀이가 끝나 버리는 셈이지요!"
바바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몇 사람이 다르샨을 위해 불렸는데, 그중 일부는 하이데라바드에서 온 이들이었다. 바바가 그들에게 말했다.
나는 예전에 하이데라바드를 꽤 자주 방문했지만, 머스트 일을 위해 신분을 숨기고 돌아다니곤 했다. 나는 자동차와 통가와 소달구지를 타고 다니곤 했다. 때로는 낙타를 타고 가야 할 때도 있었다. 나는 종종 기차역 플랫폼에서 잠을 자곤 했다. 한번은 아메다바드의 P.W.D.[공공사업부] 창고 근처 그늘진 곳에서 쉰 적이 있었다. 그날 마침 순시를 돌던 수석 기술자가 와서는 우리가 거기 머무는 것에 이의를 제기했다. 그는 우리를 그 부지에 들여보냈다는 이유로 경비원을 해고했다. 그래서 나는 에루치에게 가서 우리가 누구인지 설명하라고 했고, 그제야 그 경비원이 복직되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