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월 30일, 긴데 박사는 메헤르지, 아난드 신데, 그리고 아흐메드나가르의 도울라트 로지에 일주일 머물 예정인 물리치료사 친구 고팔 S. 조시와 함께 돌아왔다. 조시는 오전 9시부터 11시까지, 또 오후 3시부터 5시까지 하루 두 번 바바의 목, 어깨, 윗등을 마사지했다. 신데는 바바를 위해 플라스틱 천공 칼라를 가져왔는데, 그것이 더 시원하고 편안하길 바랐다. 긴데 박사는 바바가 마사지를 받지 않는 시간에 하루 세 번 칼라를 착용하라고 권했다. 오전 9시 30분부터 12시 30분, 오후 1시 30분부터 3시, 그리고 오후 4시 또는 4시 30분부터 7시까지였다. 바바는 목에 칼라를 두른 채 홀에서 남자들과 함께 앉아 있곤 했다. 긴데 박사는 다음 날 봄베이로 돌아갔다. 람 긴데와 마찬가지로 조시와 신데도 바바에게 충실히 헌신하게 되었다.
1965년 2월 1일 월요일 오전 7시 30분에 조시가 일찍 호출되었다. 아디가 그를 데려왔고 그는 바바의 침실에서 치료했다. 아흐메드나가르를 오가게 하는 대신 조시는 5일까지 메헤라자드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 그날 오전 11시, 바바는 약 45분 동안 양팔에 매우 고통스러운 저릿저릿한 감각을 느꼈다. 그 감각은 왼팔에서 더 심했고 더 오래 계속되었다. 긴데는 2일에 바바가 밤에 착용할 또 다른 플라스틱 칼라를 보냈다.
이틀 동안 바바는 그것에 대해 불평하지 않았지만, 4일에는 늘 하던 마사지를 받은 뒤 칼라를 30분 착용하자 오전 11시에 그 고통스러운 감각이 다시 찾아왔다. 고허는 혹시 심장 문제일까 걱정했지만 이제는 칼라가 바바의 어깨를 누르는 압력 때문이라고 판단했다. 조시의 마사지로 바바의 목 통증은 어느 정도 줄었지만, 그 뒤로는 목덜미나 어깨에 통증이 간격을 달리하며 다시 찾아오곤 했다. 플라스틱 칼라 때문에 팔에 날카로운 저림 감각이 생기는 것으로 판단되자 바바는 밤에 그것을 착용하지 않게 되었다.
또 4일에는 바바의 다리 길이 차이를 보정하려고 오른쪽 굽을 4분의 3인치 높인 새 차팔 한 켤레가 만들어졌다. 바바는 이것이 훨씬 더 편하다고 느꼈다.
1965년 2월 7일, 바바는 예외를 두어 긴데의 처남이자 푸나의 변호사인 V. G. 헤레카르가 가족과 함께 오전 11시에 메헤라자드에 오는 것을 허락했다. 당시 베트남 전쟁은 한창이었고, 바로 그날 미국은 북베트남에 대한 첫 보복 폭격을 개시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