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9일에 퇴원했다. 1964년 9월 6일 일요일, 바바도 신장 엑스레이 촬영을 위해 라나데의 클리닉으로 갔다. 그는 오전 9시 30분에 에루치와 고허와 함께 갔다. 아디는 모든 것이 준비되었는지 확인하려고 미리 가 있었다.
그해에는 비가 충분히 내리지 않아 아흐메드나가르 지구 농부들의 농작물이 말라 가고 있었다. 우물도 말라 가고 있어 식수 역시 문제가 되어 가고 있었다. 6일 정오 무렵, 바바가 아흐메드나가르에서 돌아온 뒤 아랑가온 마을 사람 30명이 약 15마일 내내 노래를 부르며 소달구지를 타고 메헤라자드로 왔다. 그들은 바바의 은둔 때문에 경내로 들어오기를 망설였지만, 울려 퍼지는 그들의 환호를 듣고 펜두가 그들에게 말을 건네러 갔다. 돌아온 그는 바바에게 알렸고, 바바는 오후 3시에 그들을 홀로 불러들였다.
"솔직히 말해 보세요, 왜 여기 왔습니까?" 바바가 물었다.
그들은 물 사정이 매우 심각하고 기근이 닥치려 한다고 말하며, 비를 내려 달라는 그의 축복을 청했다.
바바가 답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내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는 프라사드를 나눠 주었고, 10분 뒤 마을 사람들은 떠났다. 돌아가는 길에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들은 바바를 찬양하며 아랑가온에 도착했다. 9일부터는 사흘 동안 큰비가 계속 내려 가뭄을 면하게 되었다.
바바가 은둔 중에는 방해받지 않고 지내고 싶다는 회람문을 보냈음에도, 자발푸르의 아미야 쿠마르 하즈라는 한번 시도해 보기로 하고 9월 5일 어머니와 함께 아흐메드나가르로 왔다. 아디는 허락도 없이 온 그를 꾸짖었다. 하즈라는 아내와 어머니 사이의 갈등으로 감정적인 가정 위기를 겪고 있었기에, 에루치에게 글을 보내 바바와의 알현을 청했다. 바바는 마음을 누그러뜨려 그의 문제를 풀어 주었다. 람 라칸 샤르마는 하즈라가 뜻을 이뤘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친구와 함께 메헤라자드로 와 14일에 바바를 만났는데, 바바의 지시를 무시한 그들의 처사 때문에 아디는 몹시 못마땅해했다.
1964년 9월 10일, 나구와 그녀의 남편 라비, 그리고 갓난아들 수닐은 바바를 만나는 것이 허락되었다. 닷새 뒤인 15일에는 60명이 넘는 마을 사람들이 비를 내려 준 일에 감사하려고 메헤라자드로 왔다. 바바는 그들을 다정하게 맞았다. 그들은 바바에게 화환을 걸어 드렸고, 바바는 각자에게 과자 프라사드를 조금씩 나눠 주었다. 그는 몇 사람에게는 노래를 부르게 하고, 다른 이들에게는 아랑가온 센터에서의 활동을 이야기하게 했다. 그러자 그들이 일을 하면서 생긴 쟁점들과 불화가 드러났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