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나 센터가 개장한 뒤에는 외부 방문객이 구루프라사드에 오는 일이 거의 허용되지 않았다. 1964년 5월 25일 월요일 오후 2시, 구루프라사드에서 키쇼르 미스트리와 네네 가족이 바바를 만나 키쇼르와 네네의 딸 라즈니의 결혼 문제를 상의했다. (그 결혼식은 7월 말에 치러졌다.) 사카레 가족은 28일에 다르샨을 허락받았다.
그보다 1년 전인 1963년에 바바는 아마르 싱 사이갈에게, 인도 총리 자와할랄 네루에게 자신을 만나러 구루프라사드로 오라고 전하라고 지시했다. 사이갈이 바바의 뜻을 전했지만, 네루는 찾아올 시간을 내지 않았다.
1964년 바바가 푸나에 도착한 뒤 바우가 야간 근무를 설 때마다, 바바는 매일 그에게 물었다. "나는 은둔 중인데, 네루가 갑자기 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바우가 대답했다. "네루는 그렇게 오지 않을 것입니다, 바바. 그가 당신을 뵙고 싶으면 먼저 사람을 보내 약속을 잡을 것이고, 그러면 우리는 당신이 은둔 중이어서 만남이 불가능하다고 알려 드릴 것입니다."
"그가 약속 없이 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하고 바바가 물었다.
"그럴 리 없습니다, 바바. 네루는 너무 바쁩니다!"
"하지만 정말 그렇게 되면 어쩌겠습니까?"
이렇게 바우가 야간 당직을 서러 올 때마다 이런 문답이 매일 되풀이되었다.
그런데 1964년 5월 26일 오후 2시 30분경 바바는 만달리에게 이렇게 선언했다. "자와할랄이 곧 나에게 올 것입니다. 그는 반드시 와야 합니다!"
바바는 덧붙였다. "자와할랄은 순전히 자신의 에너지와 의지력으로 최근의 뇌졸중에서 빠르게 회복했습니다. 그러나 또 한 번 타격을 받으면[두 번째 심장마비나 뇌졸중], 그는 살아남지 못하고 즉시 세상을 떠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