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 방문객에 대한 전반적인 금지에도 불구하고, 1964년 4월 7일 바바는 미르자와 그의 아내가 아디와 함께 구루프라사드에서 자신을 만나는 것을 허락했다. 미르자는 5분 동안 바바를 단독으로 만났고, 바바는 그에게 스승의 기도문과 회개 기도문을 매일 계속 암송하며 신성한 뜻에 순응하라고 지시했다. 그런 다음 바바는 미르자의 아내도 잠시 만났다.
8일에 바바는 심전도 검사를 받았는데 약간의 관상동맥 경화증이 나타났고, 10일에는 루비 홀 클리닉에서 다시 의학 검사를 받았다. 검사 결과를 본 그랜트 박사는 바바의 당뇨가 잘 조절되고 있다고 말했다.
마하라니 샨타데비는 나흘 동안 푸나에 와 있었고, 4월 20일부터 매일 바바를 만나는 것이 허락되었다. 그날 아디도 왔고, 바바는 라마와 메헤르나트, 쉴라의 건강을 물으며 그들에게 더 마음을 써야 한다고 권했다. 아디는 24일 사로시와 빌루를 데리고 푸나로 돌아왔고, 그들은 바바에게 델리와 데라둔 여행에 대해 자세히 이야기했다.
한편 뉴욕 세계 박람회는 1964년 4월 22일 개장할 예정이었고, 미국의 애인자들은 바바의 "보편적 메시지"를 전파하기 위해 기금을 내어 아름다운 정보 부스를 세웠다.1 4월 12일 바바는 박람회 준비를 도운 모든 사람에게 보내도록 엘리자베스 패터슨과 제인 헤인즈에게 다음 전보를 보냈다.
메헤르 바바의 보편적 메시지로 뉴욕 세계 박람회를 장식한 미국의 나의 애인자들의 사랑은 축복받았습니다. 나는 이를 가능하게 했고 박람회 기간 내내 그 공간을 지킬 나의 모든 애인자들과 일꾼들에게 사랑의 축복을 보냅니다.
전시관 개장은 1964년 5월 8일까지 미뤄졌지만, 바바의 전보는 마지막의 고된 몇 주를 시련이 아니라 기쁨으로 바꾸어 놓았다. 하루에 50만 명의 방문객이 박람회에 온 것으로 추정되었고, 엘리자베스와 키티, 제인, 그리고 많은 이들의 지칠 줄 모르는 노력 덕분에 그중 많은 이가 바바의 코너를 지나며 그의 사진을 보고 그의 이름을 들었다.
바바는 처음부터 "나는 박람회에서 내 방식대로 내 일을 할 것입니다"라고 밝혔고, 바바에게 이끌려 나중에 더 많은 정보를 얻고자 머틀 비치 센터에 편지를 쓴 사람들을 보면 그것이 분명히 드러났다.
프레드와 엘라 윈터펠트는 사람들이 할지 모를 질문들에 어떻게 대답해야 하는지 물었다.
바바는 마니를 통해 편지로 이렇게 답했다. "바바의 사랑이 당신과 함께합니다. 그러니 당신이 받을지 모를 질문들 때문에 조금도 긴장하지 마십시오. 바바에 대한 당신의 사랑이 저절로 말해 줄 것이며 모든 질문에 답할 것입니다."
각주
- 1.그 부스는 미국 인테리어 전시관 건물 3층에 자리하고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