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사람들과의 교제를 피했다. 나는 모든 이에게서 완전히 떨어져 나와 냉담해졌다. 내면에서는 매 순간 죽어가고 있었다. 그러나 바바와 인연이 닿은 뒤, 내 삶에는 완전한 변모가 일어났다. 어두운 절망은 완전히 사라졌고, 그 자리를 그분에 대한 사랑스럽고 달콤한 기억이 대신했다.
세 살 난 소녀 하나가 바바 맞은편에 앉아 있었다. 바바가 그 아이를 부르자, 아이는 곧바로 다가가 절했다. 바바는 그 소녀가 부모도 없이 사가르(중앙 인도)에서 자신을 보러 푸나까지 왔다고 말씀하셨다. 그 집안의 이웃들이 바바의 다르샨을 받으러 오고 있었는데, 아이가 거기에 꼭 함께 가겠다고 우겼던 것이다.
그 뒤 마두수단이 가잘 몇 곡을 불렀고, 이후 일행은 점심을 먹으러 흩어졌다.
오후에는 한 이란 여성이 자녀들과 함께 바바에게 다가왔다. 그녀는 바바께 자신들과 아이들에게 나자르를 내려 달라고 청했다.
그녀가 떠난 뒤 바바가 말씀하셨다. "나의 나자르는 언제나 모든 이 위에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무에게나 내려앉는 것은 아닙니다. 일단 그것이 어떤 사람 위에 내려앉으면, 그는 순식간에 무한한 힘과 무한한 지식과 무한한 지복이 됩니다!"
48세의 에스판디아르 베살리는 1927년부터 1928년까지 메헤라바드의 프렘 아쉬람에서 학생으로 지냈다. 학교가 문을 닫은 직후 그는 이란의 집으로 돌아갔고, 1929년 이후로는 바바를 보지 못했다. 에스판디아르는 바바의 다르샨을 몹시 갈망했지만, 인도까지 올 돈이 없다고 편지에 썼다. 바이둘을 통해 바바는 답장을 보내, 에스판디아르가 얼마를 벌고 어떤 수단으로 생계를 이어가는지 물으셨다. 그는 체리와 사과 과수원에서 소박한 수입을 얻고 있지만, 대부분의 해에는 겨울 서리가 나무 꽃을 망쳐 버린다고 자세히 답했다. 수확이 좋으면 그것을 팔고, 생활에 필요한 돈을 쓰고도 남는 금액이 있으면 인도에 올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바바를 뵈러 올 수 없었다.
바바는 바이둘에게 답장을 쓰게 하며, 에스판디아르가 자기 과수원의 나무들에게 가서 이렇게 말하라고 지시하셨다. "메헤르 바바를 뵌 지 벌써 35년이 되었고, 나는 가서 그분을 만나고 싶다. 그러니 나의 작물아, 너희는 얼어서는 안 된다. 나무들아, 내가 나의 주님을 뵈러 갈 수 있도록 풍성한 열매를 맺어다오. 올해는 서리와 겨울이 내 작물을 망쳐서는 안 된다." 바바는 그에게 나무들 둘레를 걸으며 이 말을 되풀이하고, 그 뒤로는 다른 아무 생각도 하지 말고 걱정도 하지 말라고 지시하셨다. 그래서 에스판디아르는 매일 아침 자기 나무들에게 "말을 걸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