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으로 바바는 가짜 성인들을 조심하라고 당부했다. 당시 북인도와 다른 지역에서 전에 바바와 접촉했던 네 사람이 바바의 이름을 내세워 그의 연인들을 속이며, 자신이 바바의 차지맨이라고 주장하는 등의 행위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런 자들의 행위에 불쾌감을 나타내며, 바바는 마라티어로 투카람의 다음 구절을 인용했다:1
"긴 머리에 몸에는 재를 바르고,
온갖 모습으로 꾸민 사기꾼들이 많도다.
투카람이 말하노니, '죽은 그들의 양심은 불태워 버려라.
그들을 후려치는 것은 죄가 아니다!'"
바바는 또한 프렘과 기르자 킬나니 사이의 개인적인 갈등도 풀어주었다. 모임이 끝난 뒤, 연인들 일행은 아흐메드나가르에 있는 각자의 집으로 돌아갔다.
그날 오후, "예정에 없던" 방문객이 찾아왔다. 그의 이름은 시아부크스 골왈라였다. 그는 아디 시니어가 판치가니 파르시 고등학교에 다니던 시절의 기숙학교 선배 동창이었다. 그는 봄베이에서 약 80마일 떨어진 다하누의 외딴 지역에 살았으며, 여러 해 동안 자기 거처를 떠나지 않았다. 골왈라가 도착했을 때 그는 1926년에 바바에게서 받은 바바 로켓을 코트에 달고 있었다. 그 뒤로 그는 바바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바바나 그의 연인들과 더 이상 연락도 없었지만, 다시 바바를 뵙고 싶은 억누를 수 없는 충동이 일기 시작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누가 자신을 메헤르 바바께 데려다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하곤 했지만, 나이도 많고 몸도 약했기 때문에 아무도 선뜻 나서지 않았다.
그런데 근처에 머물던 두 젊은 파르시 남성이 쉬르디로 가서 사이 바바의 무덤에 참배할 예정이었다. 그들은 그 노인을 가엾게 여겨, 35마일 떨어진 아흐메드나가르의 메헤르 바바께까지는 못 가더라도 적어도 쉬르디까지는 데려다주겠다고 했다. 노인은 무척 기뻐했다. 하지만 쉬르디에 도착해 참배를 마친 뒤, 두 사람은 그 파르시 노인에게 다하누로 돌아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노인은 화를 내며, 자신을 메헤르 바바께 데려가겠다고 약속하지 않았느냐고 말했다. 그는 거기서 죽는 한이 있어도 쉬르디를 떠나지 않겠다고 버텼다!
두 사람은 그 노인이 뜻을 굽히지 않는다는 것을 알고 그를 아흐메드나가르로 데려왔고, 그곳 쿠쉬루 쿼터스에서 아디를 만났다. 아디는 그들에게 메헤라자드로 가라고 했지만, 정오에 도착했을 때 바바는 이미 점심을 드시러 가신 뒤였다. 알로바가 그들을 맞아 지금은 바바를 뵐 수 없으니 4시에 다시 오라고 설명했다. 그래서 그들은 차를 타고 다시 아흐메드나가르로 돌아갔다.
각주
- 1.투카람의 이 연구는 메헤라자드의 만달리 홀 벽에 걸린 나무 표지판에 적혀 있었다. 잘바이가 그 표지판을 만들도록 주선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