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디는 당연히 염려했고, 바바의 약해진 상태가 "세계 정세에 중대한 어떤 일을 예고한다"고 추측했다. 그는 1월 20일 바바의 건강 상태를 확인하러 메헤라자드로 갔다. 그는 마하라니 샨타데비에게 편지를 써서, 그해에도 바바가 다시 구루프라사드에 머물 수 있도록 허락해 달라고 요청하라는 지시를 받았다. 바바는 또 아흐메드나가르의 사랑하는 이들인 바스케르와 우샤의 예정된 결혼에도 동의했다.
에루치도 다시 병이 났다. 1962년 1월 23일 그는 부스 병원에 입원했고, 다음 날 편도선 제거 수술을 받았다. 돈이 수술 내내 곁에 있었다. 에루치는 2월 1일 어머니와 여동생 마누와 함께 메헤라자드로 돌아왔고, 이들에게는 30분 동안 바바와 함께할 시간이 허락되었다.
한편 약 3주에 걸쳐 바우는 바바의 간략한 생애 이야기를 시와 산문으로 썼고, 바바는 그 제목을 메헤르 릴라(메헤르의 신성한 놀이)라고 붙였다.
1961년 말 무렵, 데흐라 둔의 사랑하는 이들 그룹으로부터 바바의 생일에 연극을 공연하고 싶다는 편지가 도착했다. 바바는 바우에게 God Speaks에 기초해 창조의 의미와 아바타에 대한 인류의 희망을 묘사하는 짧은 희곡을 쓰라고 지시했다. 바우는 그렇게 했고, 연극 자이 메헤르가 바바 앞에서 낭독되었다. 바바는 그것을 좋아했고, 아흐메드나가르에서 공연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1962년 2월 4일 지역 센터 회원들이 불려 왔고, 바바는 그들이 거기에 참여하도록 격려했다. 또 바바는 때때로 바우를 아흐메드나가르에 보내 그 연극의 연출을 돕게 했다.
코르쉐드는 2월 8일 봄베이에서 메헤라자드에 도착해 3일 동안 머물렀다. 그날 오후 4시, 메헤르지는 푸나에서 데슈판데라는 안과 의사를 데려왔고, 그는 바바의 눈을 검사했다.
다음 날 돈 스티븐스가 유럽에서 봄베이에 도착했다. 돈(돈킨)이 그를 맞으러 보내졌고, 그들은 곧장 푸나로 차를 몰았다. 2월 11일, 바바의 지시에 따라 돈은 돈 스티븐스와 조셉, 카리 하브를 데리고 사타라와 마하발레슈와르로 가서 그곳의 바바 작업과 관련된 장소들을 둘러보았다.
13일 아침, 돈이 메헤르지의 차로 돈 스티븐스를 아흐메드나가르로 데려왔다. 아흐메드나가르에서는 아디와 프랜시스가 쿠슈루 쿼터스에서 합류했고, 네 사람은 아우랑가바드로 떠났다. 이것은 바바가 자신의 목적을 위해 돈 스티븐스와 프랜시스를 엘로라 동굴로 보낸 두 번째 경우였으며, 첫 번째는 1955년 사하바스 프로그램 때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