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바바는 어떤 사람들을 자신의 생일 축하 행사에 하미르푸르나 안드라로 보내곤 했고, 그들이 그곳에서 목격한 사랑과 장엄함은 그들의 삶을 바꾸어 놓았다. 이번 아바타의 강림에서는 하미르푸르와 안드라가 크리슈나 강림의 성지인 마투라와 브린다반을 대신하게 되었다. 앞으로 오랜 세월 동안 그곳들은 세상에 아바타 메헤르 바바의 사랑을 일깨워 줄 것이다.
1961년 3월 3일 아침, 바바는 드소토를 타고 빈가르까지 갔다가 돌아왔다. 돈과 파드리는 6일과 12일에, 아디와 람주는 15일에 트러스트의 세무상 지위를 논의하려고 메헤라자드에 왔다. 이 무렵 아바타 메헤르 바바 트러스트의 의장 쿠툼바 사스트리도 아흐메드나가르에 머물며 여러 소득세 관계자들을 만나고 있었다.
3월 22일 수요일 오전 7시 30분, 바바는 남녀 만달리와 함께 메헤라자드를 떠나 푸나로 향했다. 그들은 드소토, 메헤르지의 쉐보레, 아디의 차 이렇게 세 대의 차로 이동했다.1 그해 처음에는 메헤르지를 제외하고는 누구에게도 방문이 허락되지 않았기 때문에 구루프라사드에는 고요한 평화가 감돌았다. 나리만 다다찬지와 짐 미스트리, 그리고 아르나바즈와 케이티 이라니는 주말에 머무는 것이 허락되었지만, 바바의 초연함은 계속되었다.
우리가 그분의 기쁨을 지켜 드리는 대신 개인적 즐거움을 추구한 것이 바바의 초연함의 원인이었다. 우리의 개인적인 호불호를 그분의 기쁨 속에 녹여 버리는 것이 우리의 몫이다. 그분의 행복 안에서 함께 기뻐할 때에만 그분이 그 초연한 분위기에 머무시지 않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바바의 칩거 동안 그의 침묵은 개인적 즐거움을 서서히 잠재웠고, 그의 뜻은 점차 사랑하는 이들의 가슴속에 최고의 권위를 세워 갔다.
아게가 설명하듯, "이 기간에 바바가 자신의 칩거를 방해하지 말라고 두었던 제한들은 단순한 제한이 아니라, 우리 삶 속에 그 모든 면을 흡수해야 하는 그분의 뜻이 아름답게 비친 모습이었다. 그의 뜻을 따르고 그의 칩거를 방해하지 않음으로써, 바바를 사랑하는 이들은 그의 초연함을 덜어 드리고, 그에 따라 그의 고통도 덜어 드리는 데 도움이 되었다."
구루프라사드에서 프란시스, 펜두, 메헤르다스, 비슈누는 바바의 기분 전환을 위해 그와 함께 탁구와 카드, 캐럼을 했다. 탁구를 칠 때 바바는 높은 걸상에 걸터앉곤 했는데, 조금만 오래 서 있어도 다친 엉덩이에 무리가 갔기 때문이다. 저녁이면 그는 앞 베란다에 여성들과 함께 앉거나 드라이브를 나가곤 했다.
각주
- 1.보통 아디 시니어가 푸나에 오면 K. K. 라마크리슈난과 함께 밤을 보내곤 했다. 그러나 그해에는 아흐메드나가르로 돌아가기 전에 구루프라사드에서 이틀 밤을 지내라는 지시를 받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