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는 갑자기 쿠쉬루 쿼터스를 박차고 나갔고, 구스타지가 뒤를 따랐다. 나머지 만달리는 그때 아침 식사 중이어서 급히 뛰어나와 따라가야 했다. 바바는 다시 예전에 머물렀던 기차역 근처 다람살라로 걸어갔다.
다람살라에서는 다가올 페르시아 여정에 대한 논의가 하루 종일 이어졌다. 바바를 동행할 사람은 다음 열한 명으로 정해졌다. 아디, 바이둘, 베흐람지, 가니, 구스타지, 마사지, 너버스, 파드리, 람주, 슬램슨, 바지프다르. 또 2월 초 반다르 아바스 경유로 페르시아에 출발하고, 그전까지의 기간은 카라치 또는 그 근방에서 보내기로 했다.
페르시아 여정과 관련해 각자는 다음 내용의 인지 용지 동의서에 서명해야 했다.
1. 서명자는 자유의지에 따라, 전적으로 자신의 책임으로 이 순례에 나선다.
2. 이후 서명자는 메헤르 바바로부터 어떤 재정적/외적 도움도 기대하지 않으며, 정해진 기간 안에 특정할 수 있는 내적 이익도 바라지 않는다.
3. 또한 필요하다면 인도로 돌아올 희망까지 버리고, 무기한 바바를 따른다.
다만 가니와 람주는 세 번째 조항에서 제외되었는데, 스승이 1924년 2월 28일 이후에는 그들이 모든 구속과 약속에서 풀릴 것이라 말했기 때문이다. 바지프다르를 제외한 모두는 일주일 뒤 카라치로 출발할 준비를 하기로 정했다. 바지프다르는 봄베이로 돌아가 12월까지 우파스니 마하라지 전기 배포를 마무리한 뒤 페르시아에서 합류하기로 했다. 또 가니와 람주는 일주일간 각자 가족을 다녀오고, 파드리는 봄베이로 가서 여권 준비 문제를 나발에게 알리기로 했다. 파드리, 가니, 람주, 바지프다르는 다음 날 각자 목적지로 가기 위해 아흐메드나가르를 떠났다.
11월 5일, 모두가 스승 앞에서 동의서에 서명했다. 이후 그들은 쿠쉬루 쿼터스의 짐을 다람살라로 옮겼다. 그런데 바바는 카라치로 가는 대신, 2월에 페르시아로 가기 전까지의 기간을 하이데라바드(신드)에서 보내겠다고 발표했다.
1923년 11월 11일 일요일, 바바와 일행은 여정을 시작하려고 기차역으로 갈 준비를 했다. 출발 전 베흐람지는 이 여행에서 관리 역할을 맡고 싶지 않다고 바바에게 하소연했다. 특히 짐 문제에서 다른 사람들이 자기 말을 거의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