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4월 11일 토요일, 바바는 코레가온 파크의 푸나 시각장애인 학교와 홈을 방문했다. 그는 그 학교의 원장인 칼레 씨의 초청을 받았다. 바바는 오전 9시에 그곳에 도착했다. 그곳에는 약 150명의 시각장애 학생과, 역시 시각장애인인 10여 명의 교사가 있었다. 소년들은 바바 앞에서 노래했고, 그중 한 명은 마두수단이 작곡하고 수바드라가 가르쳐 준 환영 바잔을 불러, 시대의 아바타께서 몸소 오심으로 그들의 기관을 거룩하게 해준 데 대한 감사를 표현했다.
바바는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주었고, 나나 케르가 이를 낭독했다:
사람들은 대체로 시각장애인들이 불행하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도 때로는 그렇게 생각할지 모릅니다. 그러나 참으로 불행한 사람들은 눈이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기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실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홀로 실재하시는 하나님을 보지 못합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는 사람은 모두 눈먼 사람입니다. 볼 가치가 있는 유일한 존재는 하나님입니다. 그러니 육체의 눈을 가진 사람이라도, 육체적으로는 눈이 멀었어도 내면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보다 더 눈멀 수 있습니다.
오늘 나는 내 사랑으로 여러분을 안아 줍니다. 그래서 언젠가 여러분이 참된 시력을 얻어 어디서나 나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런 다음 바바는 학생들과 교사 한 사람 한 사람을 안아 주며 자신의 실재를 접하게 했다.
행사 도중, 어린 시각장애 소년 하나가 한동안 바바의 무릎에 앉아 있다가 너무 꼭 매달리는 바람에 억지로 떼어 놓아야 했다.
구루프라사드로 돌아오는 길에 바바는 말했다. "나는 그 소년이 아주 마음에 들었다. 그 소년이 눈먼 데에는 이유가 있다. 내가 그 기관을 방문한 것은 특별히 그 아이를 위해서였다."
바바는 라마크리슈난에게 학교로 다시 가서 다음 날 아침 그 소년을 구루프라사드로 데려오라고 지시했다. 소년이 오자, 바바는 그 아이를 다시 어루만지며 정오까지 곁에 두었다.
4월 12일 일요일 아침 다르샨 프로그램 중에 무르티 박사는 바바가 서벵골에서 다르샨을 해주기를 청했다. 데슈무크는 나그푸르에서도 그렇게 해주기를 요청했다. 바바는 데슈무크를 오른쪽에, 무르티를 왼쪽에 앉히고, 자신이 캘커타에서 다르샨을 할지 나그푸르에서 할지를 둘이 의논해 정하라고 했다. 긴 논의가 이어졌다. 한때는 데슈무크가 논쟁에서 우세했다. 그러나 바바가 무르티에게 생각해 볼 몇 가지 점을 일러 주자, 그들은 또다시 뚜렷한 결론 없이 논쟁을 계속했다.
바바는 그들의 논쟁에 큰 흥미를 보이다가 마침내 말했다. "내가 어떻게 하겠습니까? 당신들 둘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니. 나는 한 곳에만 가고 싶은데, 당신들 둘 다 나를 제각기 자기 집으로 끌고 가려 합니다. 그러니 1959년 남은 기간에는 이 문제를 다시 꺼내지 마십시오. 내년에 다시 일러 주십시오. 내가 육체를 버리지 않는다면 말입니다. 그때까지 당신[무르티]은 내 이름을 널리 전하는 데 할 일이 많을 것입니다."
그날 오후에는 셰나이 연주자가 연주를 했고, 바바는 영적 경지들에 대해 설명했다.
안드라의 사랑하는 이들이 와 있었는데, 마니캬라 라오를 본 바바가 무르티에게 말했다. "내게 대한 사랑으로 저 사람이 얼마나 점점 야위어 가는지 보시오. 그런데 당신은 날이 갈수록 살이 찌고 있군. 당신은 무르달[생기 없는] 무르티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