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중이 소란스러워지자 바바는 여성 만달리가 기다리고 있던 아시아나로 떠났다.1 다음 날인 1958년 6월 9일, 바바는 사바크 코트왈을 불렀다. 사바크의 건강은 또다시 악화되었고, 그는 몸이 나아질 때까지 봄베이에 머물게 해 달라고 바바에게 청했으며, 바바는 이를 허락했다. 이제 바우가 혼자 야간 보초를 섰고, 그는 그 일을 몇 년 동안 계속했다.
봄베이에 머무는 동안 에루치의 사촌 도랍 사타(29세)도 바바를 잠시 만났다.
성의 문제에 대해, 바바는 만달리에게 여러 번 설명했듯이 도랍에게 이렇게 말했다. "사람의 몸은 겉으로 아무리 잘생기고 아름다워 보여도 결국에는 병을 일으키는 박테리아와 고름 등으로 가득 차게 됩니다. 아름다움은 피부 한 꺼풀에 불과합니다. 그러니 왜 오직 성욕 때문에 누군가를 쫓아다닙니까?"
9일에 바바는 미국과 유럽과 호주의 연인들에게 이런 전보를 보냈다. "모든 연인들을 내 가슴에 품고 인도에 도착했습니다. 모두에게 알리십시오."
그들에게 뒤이어 보낸 편지에서 바바는 이렇게 말했다. "나를 담을 수 있는 유일한 곳은 마음입니다. 나를 가까이 간직하십시오. 나는 언제나 거기에 있습니다."
10일에 바바는 만달리와 함께 차 세 대를 타고 봄베이를 떠났다. 바바는 푸나로 가서 가네쉬킨드 가든에 있는 다디 케라왈라의 숙소에 머물렀다. 도착하자마자 비슈누와 라마크리슈난이 기다리고 있는 것을 보았는데, 그들의 존재는 바바를 언짢게 했다. 그는 비슈누를 몹시 꾸짖으며 왜 자기 허락 없이 메헤라바드를 떠났느냐고 물었다. 비슈누는 잠자코 있었고, 바바는 두 사람에게 나무 아래 가서 서 있으라고 지시했다. 사실 비슈누는 부름을 받고 그에 따라 온 것이었다. 얼마 후 바바는 그들을 안으로 불러, 7월 10일 메헤라바드에서 열고자 하는 모임의 세부 사항을 논의했다.
바바가 서방에서 인도로 돌아왔을 때 소랍지 시간포리아는 그를 맞으러 공항에 나오지 않았다. 그는 그때 카슈미르에 있었다.
바바는 그를 푸나로 불러 "카슈미르가 좋았습니까?"라고 물었다.
그는 "아주 좋았습니다, 바바"라고 대답했다.
"지금 여기서 카슈미르에서 본 모든 광경을 떠올릴 수 있습니까?"
"그렇지는 않습니다."
"아무것도 영원히 지속되지 않습니다." 하고 바바는 그에게 강조했다. "모든 것은 덧없습니다. 카슈미르에서 누렸던 즐거움을 여기서는 누리지 못하는 것은 그것이 영속적인 것이 아니라 잠시 스쳐 가는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영원하고, 그 밖의 모든 것은 사라집니다. 그러니 언제나 나를 생각 속에 간직하고, 앞으로는 다시 그런 기회를 놓치지 마십시오."
각주
- 1.여성 만달리(호마가 운전했다)와 바우, 와만은 1958년 6월 6일 봄베이에 와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