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는 메허 하우스에서는 "언제나 집에 온 것처럼 느껴진다"고 말했고, 실제로도 편안하고 안락해 보였다. 바바는 격식 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벽의 사진들을 가리키고, 그것들이 자신의 초기 시절을 떠올리게 한다고 말했다(그중 하나는 캄리 코트를 입은 바바의 사진이었다). 그는 만달리에게 메헤라에게 전보를 보내 자신이 무사하며 인도로 돌아갈 것임을 알리라고 지시했다. 로버트 라우스는 전보를 보내러 갔다가 점심거리도 사 와서, 생선과 치즈와 빵을 가지고 돌아왔다. 바바는 프란시스와 빌이 요리하는 모습을 지켜본 뒤 직접 음식을 나누어 주었다. 바바는 접시마다 치즈를 손수 잘라 주었다. 빌은 이때의 분위기가 성경의 한 장면 같았다고 회상했다.
그 비공식 모임 중에 바바는 탁자 위에 놓인 빌의 군모를 눈여겨보았다. 빌은 자신이 군대에서 심리학자로 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빌은 자기 일이 자신이 상대하는 사람들에게 어떤 영향을 미칠지 염려하고 있었다. 그 생각을 알고 있던 바바는 빌에게 누구를 면담하기 전마다 자신의 이름을 부르라고 일러 주었다.
빌은 바바를 1956년 시드니 방문 때 바바가 탔던 바로 그 차로 공항까지 모셨다. 바바는 그 차가 무사히 갈 수 있겠느냐고 물었고, 빌은 타이어에 공기만 조금 더 넣으면 괜찮다고 장담했다. 그들은 공항에 몇 시간 일찍 도착했다.
1956년 첫 방문 때와 같은 기간인 닷새를 호주에서 보낸 뒤, 바바는 에루치, 아디, 돈, 나리만과 함께 6월 7일 저녁 브리티시 에어웨이스 713편으로 떠났다.1 비행기는 다윈, 싱가포르, 콜롬보를 거쳐 다음 날 저녁 7시 15분에 봄베이 산타크루즈 공항에 도착했다. 비행기는 다윈에서 연료를 보충했고, 그곳에서 바바와 만달리는 잠시 터미널로 안내되었다. (그리하여 바바는 호주의 여덟 개 주도 가운데 네 곳에 발을 디디게 되었다.) 비행기는 네 시간 늦었지만, 바바는 원래 계획보다 열흘이나 앞당겨 도착한 셈이었다.
에이지는 이렇게 평했다. "바바는 아바타의 거처에 자기 사랑의 씨앗을 뿌렸고, 그래서 그곳에서는 그 사랑이 언제나 꽃필 것이다. 이 성스러운 땅은 미래 세대를 위해 마련되었으며, 장차 호주 전역의 영혼들이 아바타의 은총이 지닌 신성함 속에서 피난처를 찾으러 그곳으로 몰려들 것이다."
봄베이와 다른 곳에서 거의 1,000명의 연인들이 바바를 맞이하려고 공항에 나와 있었다. 모두가 그가 아무 도움 없이 자기들 쪽으로 걸어오는 것을 보고 기뻐했다. 서방의 연인들이 바바에게 바친 사랑이 어느 정도 그의 고통을 덜어 준 듯했다. 인도의 연인들이 화환을 걸어 드리자 바바의 미소가 환하게 빛났다. 바바는 그들에게 여행 이야기를 짤막하게 하며, 미국과 호주의 사하바스 프로그램이 자신을 100퍼센트 만족시켰다고 말했고, 서양인들이 자신에게 품은 사랑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각주
- 1.공교롭게도 시드니에서 출발한 같은 비행기에는 수부드 운동의 인도네시아 창시자 팍 수부도 타고 있었는데, 메러디스 스타와 그의 아내가 한동안 그를 따랐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