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는 지쳐 쉬어야 했기에 그 결정에 동의했다. 황소수레 네 대를 빌려 저녁 7시 15분 카이라에서 7마일 떨어진 메흐마다바드 역으로 갔다. 무슬림 한 사람의 도움으로 다람살라에 묵었고, 밤 11시 열차로 브로치로 떠났다. 만달리는 완전히 지쳤지만 바바는 같은 거리와 짐을 감당하고도 조금도 지친 기색이 없었다. 게다가 만달리는 하루 두 끼를 먹었는데 바바는 몇 달째 단식 중이었다. 자비로운 스승은 그들에게 먹고 마시는 것을 허락했다. 동시에 그 길이 얼마나 무자비할 수 있는지도 몸소 보여주었다.
1923년 7월 3일 새벽 3시 30분 그들은 브로치에 도착해, 역 근처 다람살라 구내에서 날이 밝을 때까지 머물렀다. 그 사이 바바와 바지프다르, 슬램슨은 통가를 타고 시내로 갔다. 바지프다르의 친척들이 잠쉐드 가든의 파르시 다람살라 숙소를 마련해 주었다. 돌아오는 길에 모두 다람살라까지 1마일 반을 걸었다. 바부 사이클왈라와 람주, 바르솝은 하인인 척해 파르시 전용 숙소에 들어갈 수 있었다. 주방이 없고 몬순 비도 적어 물이 귀했지만, 구스타지가 밖에서 쌀과 달을 지어냈다.
그들은 근처 나르마다 강으로 목욕하러 갔다. 강물은 탁하고 짠맛이 돌아, 목욕도 빨래도 개운하지 않았다. 그들은 다람살라로 돌아와 오후 4시까지 쉬었다.
대화 중 다람살라의 한 독선적인 열성 신자가, 일행에 힌두와 무슬림이 함께 있다는 사실도 모른 채 조로아스터교를 칭송하고 힌두와 무슬림을 심하게 비난했다. 만달리는 속으로 웃으며 그의 뒤틀린 논리를 들었다.
지시대로 마사지와 펜두, 바지프다르는 브로치를 떠나 봄베이로 향했다. 펜두는 건강이 크게 나빠져 몹시 쇠약한 상태였다. 바바는 나머지 만달리와 함께 오후 4시 앙클레슈와르로 출발했다. 강가로 돌아가 배를 빌려 건너기 시작했다. 강풍이 불어 돛을 올리기조차 어려웠다. 굵은 밧줄 하나가 너버스의 손목을 강하게 쳤다. 마침 머리를 그 손목에 기대고 있어 눈을 크게 다칠 뻔한 것을 간신히 피했다. 그러나 문제는 여기서 끝이 아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