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배우도 무시할 수 없는 분명한 권리와 특권이 있을 뿐 아니라, 분명한 의무와 잠재력도 있습니다. 자기 배역을 기술적으로 흠잡을 데 없이 해내는 배우도, 타고난 영적 잠재력을 외면하려 든다면 결국 하찮고 무가치합니다. 영화계는 자신이 그토록 큰 영향을 미치는 더 넓은 세상에 대한 의무를 피할 수 없으며, 그 의무는 돈을 벌고자 하는 욕망보다 영적 잠재력을 앞세울 것을 요구합니다. 영화 작가들[시나리오 작가들]과 제작자들, 배우들은 자신의 예술을 단지 혹은 주로 사업으로만 보지 말고, 자기 안의 영적 잠재력을 실현해야 합니다. 그들이 이 사실을 더 생생히 깨달을수록 그들의 노력은 더 품위 있고 만족스러운 결실을 맺게 되며, 비록 은행 계좌는 그렇지 못할지라도 자기 자신과의 내적 결산은 크게 흡족할 것입니다. 영화계가 이 영적 잠재력에 가장 큰 중요성을 둘 수 없거나 두려 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실패입니다.
삶의 긴장에서 벗어나고, 불안감을 덜며, 무엇보다 탐욕과 전쟁 때문에 생긴 내면의 공허를 메우려는 절박한 필요를 지닌 평범한 사람은 본능적으로 오락이라는 덧없는 기분 전환으로 향합니다. 그리고 영화계는 이를 상당 부분 제공합니다. 따라서 아직도 무수한 사람들의 삶에 막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영화계는 스스로에게 물어야 합니다. 인간이 진리를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도록 자기의 영적 잠재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지, 아니면 거짓된 쾌락에 영합하고 있을 뿐인지. 내일의 세계가 요구할 책임을 젊은이들이 마주하도록 격려하고 고무하고 있는지, 아니면 섹스와 폭력 범죄 영화의 과잉으로 젊은이들의 내적 성장을 가로막고 있는지. 그리고 영적이며 인간을 고양시키는 것에 대한 인간의 타고난 갈증을 희생시키면서 부와 명성을 좇고 있는지를.
모든 문제의 올바른 해결은 오직 불가분의 진리에서만 나올 수 있습니다. 이론과 실천, 인공적인 것과 자연적인 것, 실재하는 것과 거짓된 것 사이의 흔히 그릇된 구분을 과장함으로써 삶의 통일성 안에 인위적인 분열이 생길 수는 없습니다. 하나의 불가분한 생명의 모든 측면은 겉으로 드러난 차이가 아니라 그 밑바탕의 통일성을 강조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외부 세계의 사람들에게 못지않게 영화계 사람들에게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