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1월 1일 수요일, 바바는 새해를 맞아 잘레비를 나누어 주고 여성들에게 아르티를 부르게 했다. 그는 또 메헤라바드에서 펜두, 파드리, 비슈누, 돈을, 아흐메드나가르에서 아디, 페람, 다케, 발 나투, 데쉬무크를 부르게 했다. 오전 10시, 카이코바드가 바바의 지시에 따라 기도를 올렸고, 바바는 그 자리에 있던 남자 한 사람 한 사람의 발에 머리를 댔다. 다가올 사하바스의 여러 세부 사항을 논의한 뒤, 불려왔던 이들은 메헤라자드를 떠났다.
전해 9월, 바바의 남동생 아디 주니어의 아내 프라니 이라니가 여자아기를 낳았고, 그들은 아이 이름을 시린이라고 지었다. 프라니는 런던에서 그 아기를 인도로 데려왔고, 4일에 바바에게 보여 주려고 메헤라자드에 왔다. 그는 그 갓난아이를 무릎에 앉히고 놀아 주며 입을 맞추었다.
전국 대회인 란지 트로피 크리켓 경기가 1월 7일부터 9일까지 아흐메드나가르의 와디아 파크에서 열렸고, 바바는 처음 이틀 동안 팀들의 경기를 보러 갔다. 그는 경기장이 내려다보이는 질라 파리샤드(시의회) 건물 2층에서 첫날 경기 대부분을 볼 수 있었지만, 다음 날에는 지역 경찰서장이 관람객 라운지에서 그를 발견하고 만나러 왔다. 사람들이 몰려들자 바바는 평온하게 크리켓 경기를 즐길 수 없었고, 그래서 일찍 떠나기로 했다. 떠나기 전에 바바는 아흐메드나가르 지구 크리켓 협회 서기인 나게쉬 다브레에게 100루피를 기부했다.1
동서에서 서신이 쏟아져 들어오면서, 사하바스를 위한 일은 이제 전속력으로 진행되고 있었다. 바바의 다리와 엉덩이는 여전히 아팠고 때때로 경련도 있었지만, 아디 시니어가 일기에 적었듯이, "바바는 고통과 불편을 아랑곳하지 않고 쉼 없이 일을 계속하며, 서신을 듣고 지시를 내리기 위해 줄곧 앉아 계신다." 아디와 페람은 문의에 응대하고 바바의 뜻을 전달하느라 사무실에서 계속 바빴다. 또 아디는 고다브리 마이의 사하바스 방문과 관련한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사코리에 여러 차례 갔다. 메헤라자드에서는 마니가 서양에서 온 편지들에 답장을 썼다. 에루치와 바우는 동양에서 온 편지들에 답장을 했다. (에루치는 영어로, 바우는 힌디어로 답했다.) 최근 들어 우편물의 양이 눈에 띄게 늘었다.
이 무렵 바바에게 편지를 보낸 사람들 가운데 한 사람은 데라둔 출신의 영화 제작자 프라카쉬 차브라였다. 차브라는 사하바스에서 바바를 촬영하고 싶어 했고, 이를 위해 소랍지 시간포리아에게 연락했다. 시간포리아 역시 차브라의 바람을 들어 달라고 바바에게 편지를 보냈다. 바바는 이를 허락했고, 1월 20일 영화에 쓸 메시지를 구술했다.
각주
- 1.8일에 바바는 그 지역의 한 마스트를 보고 그를 차에 태워 몇 시간 동안 메헤라자드로 데려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