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의 뛰다시피 하며 바바는 차가 세워진 곳으로 가서 차에 올랐다. 사람들은 "아바타 메헤르 바바 키 자이!"를 외치며 그를 환호했다. 바바는 환하게 빛나는 얼굴로, 차가 오후 4시에 메헤라자드를 향해 떠날 때 고다브리 마이에게 손을 흔들어 작별했다. 차는 두 시간 뒤 그곳에 도착했다. 바바는 사코리 방문을 기뻐했고, 메헤라자드에서 하룻밤 쉬었다.
사코리 아쉬람의 거주자들은 바바의 차가 떠난 뒤에도 계속 먼 곳을 바라보았다. "마음을 훔치는 이가 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채 떠나갔다!"라고 에이지는 선언했다.
당시 인구 1만 8천 명이던 상감네르는 메헤라자드에서 약 55마일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었다. 와만 수브니스와 R. M. 와그마레 등은 다르샨을 청하려고 사타라에 있는 바바를 찾아왔었다. 바바는 그들의 청을 받아들여 날짜를 정했다. 상감네르에서 그처럼 소란스러운 인파가 몰릴 줄은 전혀 몰랐기에, 수브니스는 약 4천에서 5천 명만 수용할 수 있는 판달만 세웠다.
1956년 1월 27일 금요일 이른 아침, 바바는 몇몇 만달리와 함께 메헤라자드를 떠나 오전 8시에 상감네르에 도착했다. 연인들은 그를 따뜻하게 맞아 판달에 딸린 특별한 방으로 안내했다. 마을의 주요 시민들이 그에게 화환을 걸어 주고 다르샨을 받았다. 방에서 나온 바바는 단상에 자리를 잡았다. 작은 천막 안에는 아직 사람이 많지 않았고, 몇 안 되는 사람들이 그의 자이를 외치며 그를 맞았다. 의자에서 일어난 바바는 단상 가장자리에 앉아 프라사드를 나누어 주기 시작했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따로 줄을 서서 그에게 다가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1만 명이 밀려들었고, 그곳은 발 디딜 틈 없이 가득 차 넘쳐났다. 눈에 보이는 것은 그저 사람들 머리의 바다뿐이었다. 그것은 상감네르에서 한 번도 목격된 적 없는 광경이었다. 갑자기 감정에 압도된 군중이 바바를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키샨 싱은 그 장면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다.
처음에는 판달에 겨우 몇백 명만 모여 있었다. 남자들과 여자들은 질서 있게 바바에게 가서 프라사드를 받았다. 그러나 조금 뒤에는, 상감네르의 헌신자들도 놀랄 만큼 수천 명의 남자와 여자와 아이들이 다르샨과 프라사드를 받으려고 끝없는 물결처럼 판달로 밀려들었다. 줄서기를 돕기 위해 설치한 약한 대나무 차단선은, 점점 늘어나 통제할 수 없게 된 군중의 압력에 무너져 버렸다. 질서를 지키라는 마이크 방송이 거듭되었지만 아무 효과가 없었다. 바바가 무척 빠른 속도로 신성한 프라사드를 나누어 주고 있었음에도, 저마다 다른 사람보다 먼저 프라사드를 받으려고 바바에게 다가가려 했다. 그 아수라장 속에서 남자들과 여자들과 아이들이 짓눌렸다. 무언가 압도적인 것이 수천 사람의 마음을 건드려 그들이 억누를 수 없이 격해진 듯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