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차역으로 급히 간 에루치는 막 떠나려는 이들에게 타자 친 메시지를 건넸다.
다음 날이 되자 힌디 그룹은 모두 떠났고, 들어올 마라티 그룹을 위한 준비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 네 번째이자 마지막 그룹의 인원은 200명 이상으로 늘어났다. 바바는 11월 25일 메헤라바드에 와서 펜두와 다른 만달리와 함께 사하바시들의 숙소를 더 늘리는 문제를 논의했다. 바바의 오두막 앞에는 추가 판달이 세워졌고, 바바는 펜두에게 더 온 손님들 일부를 수용할 공간을 마련하라고 지시했다.
26일에는 여성 만달리를 데리고 가서 사하바스 준비 상황을 보여주었다. 그들은 메헤라자드로 돌아갔고, 바바는 오후 2시부터 5시까지 로어 메헤라바드에서 쿨다바드 카왈들이 하는 카왈리 공연에 참석했다. 가수들은 목청이 좋았고, 바바는 그들의 공연을 무척 즐겼다.
27일 오후가 되자 213명으로 이루어진 마라티 일행도 거의 모두 도착했다. 정원은 다시 새들로 가득 찼고, 그들의 달콤한 지저귐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연인들을 메헤라바드로 실어 나르는 버스들은 새벽 2시까지 역을 끊임없이 오갔고, 만달리는 모두가 텐트에 제대로 머물 수 있도록 밤새 깨어 있었다. 이것이 마지막이자 지금까지 가장 큰 그룹이었기 때문에, 마라티어를 못하는 몇몇 남성들에게도 참석이 허락되었다.
1955년 11월 28일 월요일 오전 7시 15분, 바바는 메헤라자드에서 메헤라바드에 와서 곧장 자기 오두막으로 가 만달리와 준비 상황을 논의했다. 그 사이 사하바스 그룹은 화환을 들고 베란다에 모여 있었다. 바바가 오두막에서 나오자마자 "아바타 메헤르 바바 키 자이!"라는 우레 같은 함성이 울려 퍼졌다. 바바는 홀에 들어갔다. 모인 사람들은 바바에게 화환을 걸기 시작했지만, 힌디와 텔루구 그룹과 달리 마라티 사하바스 그룹은 질서정연하지 않았고, 여러 사람이 한꺼번에 앞으로 몰려와 화환을 걸려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