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5분 안에, 여러분이 그것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 알게 될 것입니다. 이 선물은 주기도 받고도 쉽지만, 동시에 거의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내일 5분 안에 그것을 설명하겠습니다. 중요한 것은 오직 그것뿐입니다. 그러나 실재 앞에서는 이런 모든 설명과 담론 따위가 하찮은 것으로 사라집니다. 결국 이 모든 것은 꿈입니다. 여러분은 이 모든 것을 "경험"하지만, 사실은 꿈을 꾸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니란잔 싱이 잠들어 있다고 가정해 봅시다. 그가 꿈을 꿉니다. 그 꿈에서 그는 이 힌디 그룹이 내 앞에 앉아 있고, 내가 담화하고 있는 것을 봅니다. 바바가 니란잔 싱에게 말합니다. "깨어나시오, 이 모든 것은 꿈입니다!" 그러나 꿈속에서 니란잔 싱은 바바에게 되묻습니다. "당신과 여기 모인 사람들을 내 눈으로 보고 있는데, 어떻게 이것이 꿈일 수 있습니까?" 그러나 몇 시간 뒤 그가 깨어나면, 그것이 정말 모두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그 꿈속에서 바바는 그것이 꿈이라고 말했고, 이제 그는 그것이 정말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니란잔 싱의 그 꿈은 꿈속의 꿈이었습니다. 이것이 꿈인데도, 여러분은 그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여러분은 깨어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여기서 경험하는 모든 것은 꿈입니다. 깨어나는 즉시 여러분은 그것이 꿈이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며, 이 꿈에는 바바도 포함됩니다.
나는 소년 시절 하피즈를 읽는 것을 좋아했습니다. 이제 나는 하피즈가 말한 것을 영원히 체험합니다. 이제 나는 그 사랑하는 님입니다. 나는 시대마다 여러분 가운데 옵니다. 나는 만물 안에 있습니다. 세상이 그것을 받아들이든 받아들이지 않든, 나는 유일한 실재입니다.
주제를 바꾸어, 바바는 자아, 즉 "나"에 대해 언급했다.
이제 이 "나"에 대해 말해 봅시다. 여러분의 "나"와 나의 "나"는 어떻게 다릅니까? 사람은 지적으로 자기가 하나님이라고 이해할 수는 있지만, 그런 이해만으로는 자기가 하나님이라는 확신을 얻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그런 확신 없이 자신이 하나님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가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결코 용서하지 않으시는 유일한 죄입니다.
이와 관련해 하피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감정을 통해 대양의 깊이에 이르렀다고 느꼈지만, 내가 붙잡은 것은 오직 거품뿐이었다."
오직 나만이 진리입니다. 나는 태고의 분입니다. 나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 안에 있습니다. 에루치는 에루치입니다. 그는 에루치이기 때문에 스스로를 에루치라고 부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