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눈이 막 감기려 하면 바바가 발로 툭 쳐서 깨어 있으라고 했다.
1923년 1월 하순, 메헤르 바바와 만달리를 비판하는 글이 지역 구자라티 신문에 실리기 시작했다. 며칠 전에는 같은 신문에서 우파스니 마하라지도 비판받았다. 대중은 바바와 그의 파렴치한 추종자 무리에게서 멀리하라는 경고를 받았다. 스승은 그 신문 편집자의 비난에 아랑곳하지 않았고, 누구에게도 반박문을 쓰게 하지 않았다.
이 경고가 신문에 난 뒤, 메헤르 바바를 찾아온 사람은 소수의 용기 있는 이들뿐이었다. 그래서 결과적으로 그 경고는 바바의 일에 도움이 되었고, 진실한 소수만 오게 했다. 그들은 충분히 숙고하고 모든 득실을 따져본 끝에 그를 만나러 올 용기를 낸 사람들이었다. 사실 메헤르 바바는 경계해야 할 대상이 맞다. 불 가까이에 있다가 그 불속으로 뛰어드는 일은 오직 용감한 자만이 할 수 있다.
가니는 매일 늦잠을 자는 버릇이 있어 이른 아침 크리켓 경기에 참가하지 못했다. 그래서 바바는 그를 경기에서 빼고 자게 했다. 가니는 기뻐했지만, 그 기쁨은 오래가지 않았다. 그의 방은 경기가 열리던 만질의 뒷마당을 향해 있었다. 그의 침대는 잘게 나뉜 유리창이 달린 큰 창 아래 벽 옆에 놓여 있었다. 경기 중 바바는 공을 창유리 쪽으로 세게 던졌고, 때로는 유리를 깨뜨리기까지 했다. 난데없이 잠에서 깬 가니는 겁에 질려 창밖을 내다보곤 했다. 한번은 바바가 던진 공이 가장 큰 창유리를 산산이 깨뜨렸고, 가니는 화들짝 놀라 깼다. 그는 화를 내며 외쳤다. 당신이 일부러 내 창문으로 공을 던지는데 내가 어떻게 잡니까? 일부러 그러는 거 다 압니다.
바바가 답했다. 해결책은 하나다. 우리와 같이 일찍 일어나고 오후에 자라.
만질 에 밈의 제자들은 스승과 함께하는 이 길에서는 잠과 개인적 취향이 금기임을 배우고 있었다. 님의 골목에 들어서는 일 자체가 어렵다. 그 길에 들어서면 처음부터 끝까지 고통이 따르지만, 제자는 동시에 지복도 체험한다. 이런 고통과 그리움의 아픔이 없으면 제자의 삶은 공허해진다.
바바는 제자들의 약점을 찌르거나 성을 낼 때까지 놀리곤 했고, 그러다 그들이 폭발하면 웃으며 말했다. 네가 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