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때로 가니는 바바가 무언가 논평이나 설명을 해주길 바라며 일부러 가잘의 페르시아어 또는 우르두어 시구를 인용하곤 했다. 1923년 1월 29일 밤, 스승이 대화할 기분임을 보고 가니가 다음 시구를 낭송했다:
사랑은 님의 가슴에서 시작된다.
등불이 타오르지 않으면 나방이 어찌 그것에 미칠 수 있겠는가?
바바는 미끼를 물고 가니에게 이렇게 설명했다:
연인과 님이 있고, 둘을 이어 주는 고리가 사랑이라고 여겨진다. 신이 보편적 사랑 그 자체이지만, 논의를 위해 신이 처음에는 고통을 통해 탈립(구도자)을 사랑으로 끌어당긴다고 해보자. 구도자는 그 부름의 참뜻을 이해하지 못해 항의하고 저항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당장은 상황이 누그러지고, 다시 그를 끌어당기는 힘이 작용한다. 그러나 구도자의 가슴에 충분한 사랑이 타올라 그것이 신을 뵙고자 하는 열망으로 드러나는 순간, 님은 무심해진다. 이렇게 끌어당김과 밀어냄의 놀이가 규정하기 어려운 기간 동안 계속되다가, 마침내 신과의 합일로 끝난다. 하피즈가 말한 바가 바로 이것이다:
한 올 머리카락의 한쪽 끝은 내 손에, 다른 끝은 벗의 손에 있다.
우리의 줄다리기는 여러 해째 계속되고 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는 만큼, 그와 같은 비율로 때로는 나를 미워하게도 된다. 이 미움, 즉 반발은 내가 내면의 사랑으로 너를 내게 끌어당길 때 네가 보이는 저항이다. 시간이 흐르면 너도 같은 강도로 내 사랑에 응답하기 시작할 것이다. 그러면 내 사랑의 힘은 느슨해지고, 그때 나는 무심해질 것이다.
스승은 자신의 써클에 속한 모든 이를 사랑한다. 바바잔과 마하라지를 통해 내게 온 이 신성한 사랑의 보물은 때가 되면, 각자의 인연과 봉사와 고통에 따라 내 써클 사람들과 다른 이들에게도 나누어질 것이다. 너희가 기억해야 할 비의적인 사실은, 그러한 합일을 향한 연인의 불안과 갈망보다 님이 연인을 실현시키려는 열의와 갈망이 더 크다는 점이다.
밤 9시부터 자정까지는 가니나 람주 가운데 한 사람이 바바 곁을 지켰고, 자정부터 새벽 4시까지는 아스판디아르가 보초를 섰다. 아스판디아르는 낮에 일해야 해서 잠을 몇 시간밖에 못 잤으므로, 때때로 눈꺼풀이 처지곤 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