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것을 위해 온 것이 아니다. 이 말은 만달리뿐 아니라 오늘 내 곁에 있는 여러분 모두에게 해당된다. 내게 절하고 내 아르티를 올리고 나를 숭배하는 것이 내가 온 목적은 아니다. 그런 행위들은 성자들에게는 다 좋은 일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다르다. 그것으로는 안 된다. 나는 그보다 더 많은 것을 기대한다.
왜 여러분이 이곳에 불려왔느냐? 나는 여러분의 사랑을 받으러 왔고, 여러분이 내게 문자 그대로 순종하기를 바란다. 그래야 여러분이 나를 의식적으로 체험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것이 여러분의 목적이 아니라면, 여러분은 그저 일종의 소풍을 온 셈이다! 나는 오늘 모든 것을 말해 두고 싶다. 그래야 우리가 이후에는 자유로울 수 있다. 오직 하나의 실재만 있고 그 밖의 모든 것은 환상이라는 것이 바바의 살아 있는 체험이다. 우리가 보고 경험하는 이 모든 것은 무엇이냐? 우리가 여기 함께 있는 것, 내가 여러분에게 설명하는 것, 심지어 내가 아바타라는 것까지도 모두 꿈이다. 여러분은 날마다 꿈을 꾸고, 날마다 깨어나 같은 꿈을 거듭해서 경험한다.
여러분은 모두 잠들어 있으며, 그 잠속에서 나를 꿈꾸고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꿈꾸고 있다고 말하면, 여러분은 "바바, 당신은 여기 계시고 우리는 당신을 보고 있는데, 어떻게 이것이 꿈일 수 있습니까?" 하고 대답한다. 하지만 여러분이 여기서 겪고 있는 것은 무엇이든 모두 꿈이다. 실재 안에서 깨어나면, 이 모든 것이 꿈이었음을 체험하게 될 것이다.
아이는 태어나 자라면서 의식도 함께 커진다. 유년기에서 청년기, 중년기, 노년기로 나아가지만, 자기가 어디서 와서 무엇을 위해 태어났는지 생각은 하지 않는다. 이렇게 해서 생이 거듭 지나간다. 그는 세속적인 것들만 생각할 뿐, 참된 것에 대해서는 결코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가 정말로 깨어나는 일은 드물다. 이 꿈은 너무나 길다. 하피즈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수천의 연인들이 먼지 속에서 뒹굴고 있지만, 거의 아무도 그분을 깨닫지 못한다고 말한다. 사람이 깨달음을 얻으려면 숱한 순환이 거듭되어야 한다. 책들에는 영겁이 지난 뒤에야 [겨우] 한 사람이 하나님을 찾는다고 쓰여 있다. 그러나 지금은 내게 순종하는 이들이 나를 깨닫게 될 때다.
내게 기쁜 마음으로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적어도 순종하라. 내가 라오사헵에게 자기 아들을 죽이라고 말했을 때 그가 기쁜 마음으로는 못 하더라도 결국 그대로 한다면, 그래도 그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