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바는 그를 위로하며 걱정하지 말고 경찰에 자수해 자기 행위의 결과를 두려움 없이 받아들이라고 충고했다.
"내 나자르가 당신에게 있을 것입니다." 바바가 그를 안심시켰다.
벨리는 그대로 따르고 1946년 1월 31일 경찰에 자수했다. 그는 살인죄 유죄 판결을 받아 종신형으로 예르와다 교도소에 보내졌다.
교도소에서 벨리는 바바에게 편지를 썼고, 그에 대한 한 답장에서 바바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성자를 사랑하는 만큼 죄인도 사랑합니다.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데에는 결코 너무 늦음도 없고 지나침도 없습니다. 가능한 한 많이 바바를 생각하고, 자기 자신은 가능한 한 적게 생각하십시오."
벨리는 거듭 편지로 다르샨을 갈망하고 있다고 썼다. 그는 바바의 책들을 요청해 읽었다. 1954년 바바가 푸나를 지나기 며칠 전, 다르샨을 요청하는 벨리의 편지들이 빗발쳐 들어왔다. 바바는 당국이 그 죄수에게 다르샨을 허락한다는 조건으로 동의했다. 아디 시니어를 통해 그 일이 마련되었다.
바바는 오전 9시경 예르와다에 도착했다. 푸나와 바르시, 아흐메드나가르, 구자라트의 러버들도 함께 와 있었다. 바바는 먼저 교도소 관리들의 영접을 받았는데, 그들은 지극한 존경과 경외심으로 그를 맞이했다. 환영식이 마련되었고, 교도소 소장은 바바의 다르샨을 받게 되어 크게 기뻐했다.
그 뒤 벨리에게 단독 면담이 허락되었다.
"왜 그렇게 조급해합니까?"
바바가 그에게 물었다.
"여기서는 나를 기억할 가장 좋은 기회가 당신에게 주어졌습니다. 교도관들이 시키는 대로 하고, 내 지시를 따르면 나는 당신을 기쁘게 여길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면담에 함께 있던 관리들은 바바에게 매우 감사했다. 벨리가 골칫거리 수감자였기 때문이었다.
벨리는 사랑과 헌신으로 벅차올라 두 손을 모으고 말했다. "오늘은 제 생애에서 가장 기쁜 날입니다." 바바는 그에게 몇 마디 더 충고한 뒤 그를 안아 주었고, 두 사람의 사진이 찍혔다. 헤어질 때 벨리는 바바에게서 다시 한 번 포옹을 받았고, 바바는 11시에 교도소를 떠났다.
사타라에서 바바는 다시 여성들과 함께 그래프턴 방갈로에 머물렀지만, 남성 만달리가 있는 로즈우드 방갈로는 하루 두 번 찾아갔다.
1954년 10월 6일 수요일, 바바가 만달리에게 지시했다. "나와 여러분 모두는 내일 자정까지 깨어 있을 것입니다. 오후 1시부터 자정까지 모두 물만 마시며 금식하고, 오후 9시에는 커피만 마시십시오. 모두 내일 오전 6시에 세정과 목욕을 마친 뒤 로즈우드에 모이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