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10월 1일 금요일, 서양 남성들이 떠난 다음 날, 바바는 오후에 메헤라바드에 와서 관련된 만달리에게 4일까지 모든 일을 마무리하고 회계를 모두 정산하라고 지시했다. 그런 다음 바바는 사타라 출발일이 5일이라고 알렸다. 그렇게 짧은 시간 안에 대여한 물품을 다 챙겨 아흐메드나가르의 상인들에게 돌려보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펜두는 바바의 뜻대로 그 일을 해냈다.
필라마이는 10월 2일 예기치 않게 와서 그날과 다음 날 쿠쉬루 쿼터스에서 바바를 만났다. 바바는 그녀가 친한 친구 굴마이와 함께 쿠쉬루 쿼터스에 일주일 머무는 것을 허락했다.
나나 케르는 여전히 장티푸스를 앓고 있었고 돈이 그를 치료하고 있었다. 만달리가 사타라로 떠나야 했으므로 돈은 나나를 아흐메드나가르의 아유르베다 병원으로 보내자고 권했다. 그렇게 했고, 발 수베다르가 계속 나나를 돌보았다. 나나는 조금 회복된 뒤 8일에 나그푸르로 떠났다.
바바는 1954년 10월 5일 화요일 남녀 만달리와 함께 메헤라자드를 떠나 사타라로 갔다. 사로쉬가 바바와 "안데르나"(안쪽, 은거 생활을 하는) 여성들을 태워 갔고, 라노와 나자, 닐루는 에룩이 모는 아디의 차를 타고 갔다. 바바의 차는 사로쉬 모터 웍스에 섰고, 그곳에서 그는 아디 시니어와 다케, 예쉬완트 라오를 만났다. 사타라로 출발하기 전에 그는 빌루 빌라에 들러 굴마이와 피로자, 필라마이를 만났다.
푸나에서 여정을 끊으며 바바는 35세의 헌신자 벨리 피로즈 란델리아를 보기 위해 예르와다 중앙 교도소를 방문했다. 젊은 시절 벨리는 우파스니 마하라지의 헌신자가 되었다. 그는 학업을 그만두고 1941년 우파스니 마하라지가 세상을 떠나기 전후 여러 달 동안 사코리에서 살았다. 그러나 그 젊은이는 감정적으로 불안정했고 신경질적인 기질을 지니고 있었다. 그의 형 노시르는 봄베이의 한 대학생이었고, 그 역시 마하라지를 찾아가곤 했다. 어쩌다 보니 벨리는 마하라지가, 그리고 나중에는 부모마저도 노시르를 더 사랑한다고 여기게 되었다. (아버지는 더 공부시키려고 노시르를 미국에 보내려 했다.) 이를 견디지 못한 벨리는 형을 미워하기 시작했다. 그들 사이의 적대감은 점점 커졌고, 1945년 5월 마침내 형이 목에 깊은 상처를 입은 채 침대 위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다. 질투에 사로잡힌 벨리가 형을 살해한 것이었다.
그 뒤 여덟 달 동안 벨리는 경찰의 눈을 피해 떠돌아다녔다. 그는 메헤르 바바에 대해 듣고 필사적으로 만나려 했지만, 바바는 마스트 순방 중이었다. 펜두는 그에게 자수하고 다시 메헤라바드로 오지 말라고 조언했다. 그러나 벨리는 아흐메드나가르에 남아 있다가 어느 날 돌아온 바바를 만났다. 벨리는 자신의 범죄를 고백하고 진심으로 뉘우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