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장: 만질-에-밈
1922년· 바바 28세페이지 364 / 5,444
그는 빈자 중 한 사람을 설득해 전차 요금을 먼저 빌렸고, 나중에 갚고 돌아갈 차비까지 주겠다고 약속했다. 바지프다르는 이렇게 해서 도움받을 만한 사람들을 만질로 많이 데려왔다.
람주는 바이컬라 다리 주변을 뒤지고 다니다가 그런 거지 무리를 발견했다. 다행히 친구를 만나, 그들을 만질로 데려오는 데 필요한 1루피를 빌릴 수 있었다. 만달리 각자는 스승의 지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빈자들은 만달리의 의도를 선뜻 믿지 못했다. 전차비나 택시비조차 없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들에게 무료 음식과 옷을 줄 수 있느냐고 의아해했다. 일부는 함정에 빠져 수용소 같은 곳에 갇힐까 봐 두려워하고 의심했다. 그러나 만질-에-밈에 도착해 바바의 따뜻한 환대를 받자 그런 의심은 모두 사라졌다.
스승은 모여든 200명이 넘는 빈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을 직접 목욕시키고, 한 사람씩 손수 음식을 나눠 주었다. 그는 남녀 모두에게 옷을 주었고, 그중 세 사람에게는 화환까지 걸어 주었다. 그리고는 다정하게 돌려보냈다. 루스톰은 다리 없는 그 남자를 다시 수레에 태워 데려다주었다. 그 남자는 새 옷을 입고 목에 화환까지 두르고 있어,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 보였다.
빈자들이 모두 돌아간 뒤 바바는 사로쉬에게 얼음을 넣은 물 네 양동이를 가져오고 장미 시럽 세 병을 부어 셔벗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사로쉬는 그대로 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만달리는 하루 금식 끝에 시원한 음료를 마실 생각에 들떠 기다렸다. 그때 마사지가 부적절한 말을 하자 바바가 크게 불쾌해했다.
"사로쉬, 그 장미 셔벗 네 양동이를 하수구에 버리십시오!"라고 바바가 말했다.
결국 네 양동이 모두 버려졌고, 만달리는 바바를 건드린 마사지를 속으로 원망했다. 사로쉬가 바바에게 다가가 "부디 용서해 주십시오. 다들 몹시 목이 마릅니다"라고 청했다. 얼마 후 바바는 누그러졌다. 새 셔벗을 다시 만들어 나눴고, 만달리는 남은 음식을 먹으며 금식을 풀었다.
12세기의 저명한 수피 스승 바바 압두르 레만 말랑(또는 하지 말랑 샤)의 묘는 봄베이 북동쪽 30마일 거리인 칼리안 근처에 있다. 이 성지는 힌두와 무슬림 모두의 순례지로 유명했고, 서로 다른 종교의 의식이 함께 치러지던 몇 안 되는 다르가(묘소) 가운데 하나였다. 바바는 그곳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10월 30일 이른 아침 바바는 만달리 몇 사람과 함께 기차로 봄베이를 떠났다. 칼리안에 이르자 그들은 말랑가드라 불리는 숲 우거진 언덕의 묘소로 가기 위해 차 두 대를 빌렸다. 언덕으로 향했지만, 최근 내린 비 때문에 비포장길이 심하게 질어 있었다. 차는 6마일까지만 갈 수 있어 나머지는 걸어가야 했다. 하지만 언덕 지대를 3마일이나 걸었는데도 성지를 찾지 못했다. 알고 보니 그들은 방향을 잘못 잡고 걸어간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