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빈자 중 한 사람을 설득해 전차 요금을 먼저 빌렸고, 나중에 갚고 돌아갈 차비까지 주겠다고 약속했다. 바지프다르는 이런 방식으로 도움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들을 많이 만질로 데려오는 데 성공했다.
람주는 바이컬라 다리 근처를 돌다가 그런 거지 무리를 발견했다. 다행히 친구를 만나, 그들을 만질로 데려오는 데 필요한 1루피를 빌릴 수 있었다. 만달리 각자는 스승의 지시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어려움을 겪었다. 빈자들은 만달리의 의도를 선뜻 믿지 못했다. 전차비나 택시비조차 없는 사람이 어떻게 자기들에게 무료 음식과 옷을 줄 수 있느냐고 의아해했다. 일부는 함정에 빠져 수용소 같은 곳에 갇힐까 봐 두려워하고 의심했다. 그러나 만질-에-밈에 도착해 바바의 따뜻한 환대를 받자 그런 의심은 모두 사라졌다.
스승은 모여든 200명이 넘는 빈자들 가운데 많은 사람을 직접 목욕시키고, 한 사람씩 손수 음식을 나눠 주었다. 남녀 각각에게 옷을 나눠 주었고, 세 사람에게는 화환까지 걸어 주었다. 그리고는 다정하게 돌려보냈다. 루스톰은 다리 없는 그 남자를 다시 수레에 태워 데려다주었다. 그 남자는 새 옷을 입고 목에는 화환까지 걸고 있어 이전과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빈자들이 모두 돌아간 뒤 바바는 사로쉬에게 얼음을 넣은 물 네 양동이를 가져오고 장미 시럽 세 병을 부어 셔벗을 만들라고 지시했다. 사로쉬는 그대로 했다. 모든 준비가 끝나자 만달리는 하루 금식 끝에 시원한 음료를 마실 생각에 들떠 기다렸다. 그때 마사지가 부적절한 말을 하자 바바가 크게 불쾌해했다.
"사로쉬, 그 장미 셔벗 네 양동이를 하수구에 버려라!"라고 바바가 말했다.
결국 네 양동이 모두 버려졌고, 만달리는 바바를 건드린 마사지를 속으로 원망했다. 사로쉬가 바바에게 다가가 "제발 용서해 주십시오. 모두 너무 목이 마릅니다"라고 청했다. 잠시 후 바바는 진정했다. 새 셔벗을 다시 만들어 나눴고, 만달리는 남은 음식을 먹으며 금식을 풀었다.
12세기의 저명한 수피 스승 바바 압두르 레흐만 말랑(또는 하지 말랑 샤)의 묘는 봄베이 북동쪽 30마일 거리인 칼리안 근처에 있다. 이 성지는 힌두와 무슬림 모두의 순례지로 유명했고, 서로 다른 종교의 의식이 함께 치러지던 몇 안 되는 다르가(묘소) 가운데 하나였다. 바바는 그곳을 방문할 계획을 세웠다.
10월 30일 이른 아침 바바는 만달리 몇 사람과 함께 기차로 봄베이를 떠났다. 칼리안에 도착한 그들은 말랑가드라는 숲 우거진 언덕에 있는 묘소로 가기 위해 차 두 대를 빌렸다. 언덕으로 향했지만, 최근 내린 비 때문에 비포장길이 심하게 질어 있었다. 차는 6마일까지만 갈 수 있어 나머지는 걸어가야 했다. 하지만 언덕 지대를 3마일이나 걸었는데도 성지를 찾지 못했다. 알고 보니 그들은 방향을 잘못 잡고 걸어간 것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