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달리가 웃음을 터뜨린 것은, 코차르가 사실 바바의 분명한 명령을 어기고 무쏘리로 가서 바바를 만났고, 데흐라둔에서도 그러지 말라는 바바의 지시에도 계속 찾아와 바바를 성가시게 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코차르는 잠자코 있을 뿐 반박하지 않았다.
바바는 싱에게 몇 가지 지시를 내린 뒤 그를 하미르푸르로 돌려보냈다. 그날 늦게 바바는 자신에게 헌신적인 코차르의 가족을 만나기 위해 그의 집을 방문했다. 장녀 라지는 특히 바바에게 헌신적이었다. 가족은 몇 곡의 노래로 바바를 즐겁게 해드렸다. 바바는 그들의 사랑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코차르가 매주 일요일마다 만달리의 거처를 방문하는 것을 허락했다.
이어 바바는 헬란의 집을 방문했다. 헬란의 가족은 어려운 시기를 보내고 있었는데, 그 이유 중 하나는 분할 이후 파키스탄에 있던 모든 재산을 버리고 인도로 피란해야 했기 때문이었다. (코차르 역시 파키스탄에서 온 난민이었다.) 무슬림과 힌두교도 사이의 분할은 국경 양쪽 사람들에게 큰 고통을 안겨 주었다. 대규모 학살이 벌어졌고, 여성들은 강간당했으며, 수천 명이 목숨을 잃었고 그보다 더 많은 이들이 집을 잃었다. 사람들은 종교라는 이름 아래 광신에 빠져 극악한 폭력을 저질렀다.
헬란의 가족을 위로한 뒤 바바는 그곳을 떠나 케키 날라발라의 집으로 갔다. 그의 가족을 만난 뒤 바바는 돌아왔다. 차 안에서 바바는 헬란의 딸도 라지처럼 자신을 깊이 사랑한다고 말했다.
그러고는 농담으로 말했다. "내가 하리찬드 코차르의 아버지일 수도 있고, 그의 딸 라지의 진짜 아버지일 수도 있습니다. 나에게는 셀 수 없이 많은 자녀가 있습니다. 하지만 그들 가운데 몇은 마발리[개구쟁이] 같은 자식들입니다. 이를테면 엘차, 키샨, 그리고 하리찬드 말입니다!"
1953년 6월 30일 화요일, 닐루가 바바에게 이렇게 하소연했다. "돈이 외국 의학 저널 구독을 끊으려 합니다. 당신께서 제게 최신 동향을 따라가라고 하셨기에 그 저널이 제게 필요합니다. 그에게 그러지 말라고 말씀해 주십시오."
바바가 대답했다. "하피즈에게 물어 닐루의 소원이 이루어질지 봅시다."
바바는 알로바에게 디반에하피즈를 가져와 아무 데나 펼치라고 했다. 알로바가 페르시아어로 읽자 바바가 다음 행들을 번역했다:
나는 낙원의 정원에서 꽃을 꺾어 나의 사랑하는 님과 하나가 되리라! 나는 영겁토록 당신의 연인이었노라. 이제 제게 희망의 소식을 주실 때가 되었도다! 믿지 못하겠거든 중국의 위대한 현인에게 물어보라! 충실하고 헌신적이 되는 일은 누구에게나 가능한 것이 아니니.
